[한경에세이] 유예된 행복은 없다

김나영 서울 양정중 교사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 상담을 요청했다. 영재고 입시를 준비하는데 시험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 잠도 잘 못 잔다고 했다.

“영재학교에는 왜 가고 싶은 거니?”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가기 쉽대요.”“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는?” “취업이 잘된대요.”

“어떤 일을 하고 싶길래?” “돈 많이 벌고, 좋은 사람과 결혼해야죠.”

“결혼해서 어떻게 살고 싶은데?” “아기를 낳아야죠.”“아기를 낳으면 어떻게 키우고 싶어?” “영재고 보내고, 좋은 대학 보내야지요.”

현재를 참고 견뎌 좋은 학교와 직장에 가면 된다는 ‘주입된 행복’에 빠진 모습이었다.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무엇을 할 때 재미있고 행복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행복은 ‘몰입’과 매우 밀접하다.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한 사람도 있고, 테니스를 칠 때 행복한 사람도 있다. 어떤 일에 열정을 가지고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지만, 분명한 건 누구나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입할 때 행복하다는 점이다. 몰입은 고도의 지적 능력이 발휘되도록 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즐거운 상태가 오래 유지되게 돕는다.인공지능(AI)이 대체하기 힘든 창조적 사고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몰입이 필요하다.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보자. 도서관에 가서 관심이 가는 책을 골라봐도 좋고, 영화를 봐도 좋고, 전시에 가도 좋다. 금방 찾아지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소설을 보다가, 혹은 드라마를 보다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도 한다.

물론 누구나 해야 하는 과제가 있긴 하다. 하지만 쉼 없이 그것에만 매달리고, 과제를 완벽히 수행하고, 평가를 잘 받는 데 치우쳐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아간다고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쉼이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 몰입할 수 있는 게 팝콘처럼 떠오른다. 좋아하는 걸 찾아 몰입하면 행복하다.

하지만 이 또한 과유불급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에 몰입해서 건강을 해치면 행복을 지속할 수 없다. 인생은 길다. 오래 즐기며 해야지, 너무 달리면 금방 지친다. 공부(또는 일)와 쉼, 여가 생활의 균형이 필요하다. 더불어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기쁨을 느끼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누구나 ‘친밀하고 좋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현재를 희생하며 꼭 무언가 결과를 내야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공부나 일을 찾고, 그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장기적 관점에서 여가와 균형을 이루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하기를 연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