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대비…中, 중남미서 '반미 전선' 짠다

美 공백 파고드는 中

시진핑, 기업인 400여명 대동
페루 APEC 정상회의 참석
방문 맞춰 中자본투입 항만 개항
中·페루, 30개 협정 체결 예정

美와 경제결속 느슨해진 중남미
中, 트럼프 재등판에 공조 채비
< 손잡은 中·페루 > 14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남미 국가와 경제 연대를 본격 강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중국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만큼 중남미 국가들과 손잡고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 질서를 약화시키겠다는 포석이다. ‘트럼프 2.0 시대’가 개막하기 전에 미국 주변국을 적극 활용해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페루, 30개 양자 협정 체결”

15일 CCTV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기업인 400여 명을 데리고 전날 남미 페루에 도착했다. 15~1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페루와 경제협력을 심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페루 수도 리마에 도착한 시 주석은 “최근 몇 년 동안 양국 관계는 심화·발전해왔다”며 “이번 방문으로 중국과 페루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새로운 수준으로 높아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 협력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 주석이 이번 방문 기간 약 30개 양자 협정을 맺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14일엔 36억달러의 중국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 자금이 투입된 창카이항도 개항했다. 시 주석은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과 함께 온라인 개항 행사에서 준공을 축하했다. 창카이항은 중국이 운영하는 남미의 첫 항만 시설이다. 이를 통해 중국과 남미 간 화물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이를 두고 미국에선 창카이항이 군사 용도로 전환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은 중국의 창카이항 관여 수준을 볼 때 페루가 중국 군함의 거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뒤바뀐 중남미 최대 교역국

2015년까지만 해도 페루의 최대 무역국은 미국이었다. 이후 중국이 빠르게 앞지르며 페루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량 격차는 점차 커졌다. 트럼프 1기와 조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지난해 기준 무역량 격차는 163억달러까지 벌어졌다.

페루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최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중남미 국가와 경제적 연계를 강화하는 데 공들이고 있다. 미국이 대중남미 정책 중점을 불법 이민과 마약 억제에 두면서 생긴 경제협력 공백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중남미 국가 중 여전히 미국과 활발하게 교역하는 곳은 멕시코와 콜롬비아 정도다. 2000년엔 미국이 중남미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가장 많이 교역했지만 상황이 빠르게 바뀌었다. 중국이 중남미 지역에 적극 진출하며 원자재 부문에선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브라질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지하철, 에콰도르의 수력발전 댐 등 2861억달러 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도 중국이 맡아 준공했거나 진행 중이다.

이미 지난해 교역액 기준 중국은 남미 최대 경제국 브라질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 페루 칠레 파나마 파라과이의 역외 최대 무역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더 이상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 아니다”며 “미국의 무관심을 틈타 중국이 중남미와 결속을 강화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질서와의 결별을 촉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지역 경제 정책을 새롭고 효과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중남미 지역은 중국의 이익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마이클 시프터 미국 싱크탱크 미주간대화(IAD) 선임연구원 역시 “중남미 국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새롭게 집권하는 향후 4년간 어떤 일이 발생할지 우려하고 있다”며 “‘트럼프 관세 장벽’이 일부 중남미 국가를 잠재적으로 중국에 더 가깝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