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으로 100% 보장되는 펀드라면서요?" [윤현철의 Invest&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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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은행이나 증권사 VIP 고객센터에서 고객들에게 유행처럼 판매되던 펀드 상품 중 ‘무역금융펀드’라는 것이 있었다.펀드 명에 ‘무역’, ‘금융’ 등 용어가 붙으니 뭔가 멋진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쉽게 말해 무역 회사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이런 펀드의 수익 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펀드의 재원을 무역 회사에 직접 대출해 대출 이자 상당액의 수익으로 얻는 구조다. 둘째는 펀드 재원으로 무역 회사의 매출채권을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한 뒤 할인율만큼의 수익(채권을 10% 할인해 매입하면, 위 할인율에서 비용을 공제한 만큼의 수익이 발생)을 얻는 구조다.

문제는 본질적으로 회수 가능성이 불안정하다는 데 있다. 무역 회사에 직접 대출해주는 경우 기본적으로 부동산 등 확실한 물적 담보가 아니라 원자재(설탕, 철광석, 곡물 등)를 담보로 잡거나 현지의 광업권 등을 담보로 잡는 경우가 있어서 대출금 회수가 지연될 때 담보 가치 및 환가성에 문제가 있다. 매출채권을 할인해 매입하는 구조 역시 매출채권을 높은 할인율로 할인해서 매매할 정도라면 해당 매출채권이 부실채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보험사 보장’ 철석같이 믿었는데…

이에 당시 금융사들은 고객들에게 무역금융펀드의 안전성을 어필하기 위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급 보험사가 100% 보장’ 등의 조건을 상품설명서에 기재했다. 이에 만일의 경우에도 보험으로 완전히 커버되는 안전한 상품으로 인식하고 펀드에 가입하는 고객이 많았다.이 펀드는 은행, 증권사 등의 VIP 고객센터에서 주로 판매됐다. 소수의 고객을 상대로 “상품판매가 곧 마감된다”며 이른바 ‘선착순 마케팅’을 했다. 가입 금액도 기본 50만달러(약 7억원)를 넘는 고액인 경우가 많았다. 대표 사례가 아름드리 펀드, TA(TransAsia Private Capital Limited) 무역금융펀드, 피델리스 펀드 등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동아시아 원자재 무역의 매출채권 회수가 곤란해지는 사태가 여럿 발생했다. 심지어는 펀드에서 투자한 매출채권 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나 부실 채권이었던 경우도 확인됐다. 고객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이른바 ‘보험사 보장’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사실상 대부분이었다.

금융감독원에서 은행·증권사들의 보험 판매 행태를 조사한 결과 일부 판매사는 영업정지 등 제재를 받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금감원의 중재로 고객과 판매자 사이에 자율 조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 결과 일부 고객과 판매사 사이에 여러 건의 소송이 현재 진행 중이다.

미고지 면책 조건 들어 보험금 지급 거절…당국 제재

금감원이 제재를 취한 주된 사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면책 조건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 매출채권 미회수 상황이 발생한 보험사에선 각종 면책 조건을 들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전에 면책 조건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고객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보험사 100% 보장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 추구”등만 강조하는 마케팅을 했던 것이다.둘째, 보험 가입자와 보험 수익자에 대한 보험 구조의 왜곡이다. 대부분 무역금융펀드는 펀드나 펀드 운용사에서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펀드가 자산을 대출하거나 매입한 무역 회사가 가입하는 것이고, 보험금 청구권자도 무역 회사다. 그런데 판매 시점에는 단순히 보험사가 100% 보장하는 펀드라고 설명하니, 고객들로서는 마치 펀드 또는 펀드 운용사가 직접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까지 청구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오인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매출채권을 보험사가 100% 보장”이라고 홍보하기는 했지만, 실제 보험의 부보 범위가 매출채권의 액면금액 전부가 아닌 90% 정도에 불과해 부보 범위를 왜곡해 판매한 경우다.

넷째, 판매사의 지점장이 상품 가입계약서에 “원금 손실이 전혀 없음”이라고 자필 서명까지 하고서 고객을 유치한 사례도 발견됐다.

보상 정책 천차만별…법원 판단도 사안별로 달라

무역금융펀드에 가입한 고객들이 판매사를 상대로 제기한 일련의 소송에서 하급심 법원은 상품마다 판매사의 책임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TA 무역금융펀드 관련 소송에서 법원은 “판매사 직원이 설명 의무(면책 약관의 존재 등)를 위반한 결과 투자자가 계약의 중요 부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착오에 빠져 체결됐다”고 봐 계약을 취소하고 펀드 가입금액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아름드리펀드 관련 일부 소송에선 “모든 보험계약에는 면책 약관이 당연히 존재하고, 이 사건 보험계약에 면책 약관이 존재하는지는 펀드 가입의 중요한 고려 사유가 아니었다”고 봐 계약의 취소를 부인했다. 다만 법원은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며 판매사의 일부 손해배상 책임만은 인정했다. 또 피델리스펀드 사건에선 보부 범위가 매출채권의 100%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판매사가 “100% 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설명한 것을 계약취소 사유로 인정하기도 했다.

펀드 판매사가 피해 금액 중 일부를 고객에 보상해준 뒤 운용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경우도 있다. 펀드 판매사들은 고객이 제기한 소송에선 “보험사 면책 약관에 대한 설명 의무를 다했다”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운용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선 “운용사가 판매사에 면책 약관에 대해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피해 보상 정책의 경우 거의 동일한 구조의 무역금융펀드 상품이라도 고객에게 선제 전액 변제하고 운용사를 상대로 구상 청구를 하는 경우, 고객에 일부 변제만 하는 경우, 고객에게 전혀 변제하지 않는 경우 등 각 은행·증권사별로 방침이 모두 달라 고객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고객은 피해 보상이 소극적인 은행에서 모든 금융 자산 예치금을 인출해 보상이 적극적인 은행으로 주거래 은행을 바꾸기도 한다.펀드 판매사 등이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은 펀드에 투자해 본 피해를 모두 회복하기 위해선 수년간의 길고 긴 소송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VIP 센터에서만 판매하는 상품이다”, “선착순 판매 상품이니 빨리 결정하셔야 한다”는 등의 설명에 경계심을 갖고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등 펀드 가입 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윤현철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ㅣ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35기로 수료했다. 고려대학교 법무대학원에서 금융법을 전공했으며, 런던 퀸메리대학교 로스쿨 상법연구소 방문학자 과정을 마쳤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및 경영권 분쟁, 기업 인수 자문, 부동산 금융 자문, 국내외 투자 펀드 관련 손해배상청구 등 금융 부문에서 독보적인 경험과 실력을 갖춘 변호사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