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연의 경영 오지랖] '승진회피 시대'의 동기부여

‘승진 회피의 시대’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2030세대 직장인 11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54.8%가 ‘임원 승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러워서’라는 대답이 1위(43.6%)를 차지했다.

한때 직장인에게 승진은 인생의 목표이자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임원 기피’ 현상이 시작되더니 최근 들어서는 ‘팀장 보직 기피’ 현상까지 더해졌다. 2030세대는 워라밸을 위해 승진이나 보직을 기피하고, 4050세대는 고용 안정성을 위해 기피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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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조직의 리더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임원 자리는 한정돼 있고 많은 사람이 ‘굳이 임원을 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인사관리가 편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승진’ ‘임원’이라는 단어가 동기를 부여하지 못할 때 관리는 더 힘들어지는 법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생산성도 떨어질 위험이 크다. 어쩌다가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을까?

첫 번째 이유는 길어진 수명에 따른 생애주기 변화다. 늦게 결혼해 30대 중반 이후에 첫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를 분담하느라 ‘워라밸’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임원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할 40대 중반 이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불안한 임원 자리’보다는 현재의 안정된 정규직 자리에서 계속 아이를 키우고 지원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정년이 주기적으로 연장되고 있기에 60세 혹은 그 이후까지 최대한 버티다가 은퇴 이후 20~30년간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훨씬 계획을 세우기에도 안정적이라는 장점도 있다.두 번째 이유는 자산 격차의 증대다. 초고령 시대에 은퇴 후의 긴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자산 증식에 대한 갈망이 커지면서 소득을 좀 더 올리고 직장에서 성취감을 얻기 위해 헌신하기보다는 일은 딱 주어진 만큼만 하고 자투리 시간이나 퇴근 이후 시간에 투자 공부를 하고 이를 실행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자산 격차까지 커지면서 어차피 임원까지 가봤자 근로소득으로는 큰 자산을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도 더해졌다.

변화한 생애주기와 가치관에 맞춰 새로운 인사관리 방식과 동기 부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금융권 일부에서 시행하는 ‘셀프 승진 추천제도’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연차에 따라 자동으로 승진 대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승진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의 계획에 따라 진급 대상자로 추천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의 이 변화를 인식하고 각자 조직에 맞는 대응 방안을 하루라도 빨리 찾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돌아볼 때가 됐다. 그동안 임원이 되면 성격이 파탄 나거나 몸이 망가지거나 혹은 그냥 무능해지는 경우를 수없이 봐 온 이들에게 ‘롤 모델’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닐지 말이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