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낙수효과 컸다…중소 부품사 영업익 77%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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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융합기술원, 100개사 조사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외형이 커지고 수익성이 좋아지자 그 효과가 국내 자동차 부품 회사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중견·중소 부품 업체의 매출 및 영업이익 증가율이 대형 부품 업체를 앞서는 등 ‘낙수 효과’가 몇몇 대형 업체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이 좋아진 부품 업체가 전기자동차, 자율주행 시스템 등 미래차에 들어갈 부품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는 등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5곳 상반기 매출 8% 뛰어
45개 중견 부품사 영업익 7% 쑥
납품대금 연동제, 이익 증가 기여
부품사 "차세대 기술 R&D 투자"
중소 부품사 이익 더 늘어
1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라북도 등이 공동 출자한 자동차융합기술원이 국내 100개 자동차 부품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4년 상반기 경영 성과와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25개 중소 부품 업체(매출 1500억원 미만)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567억원으로 1년 전(319억원)보다 77.4%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1조1129억원에서 1조2238억원으로 8.3% 뛰었다.
45개 중견 부품사(매출 1500억~7000억원)의 올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조6212억원, 4015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7.3%씩 확대됐다. 반면 현대모비스·현대트랜시스·현대위아 등 현대차그룹 계열 부품사 5곳이 포함된 21개 대형 업체(매출 7000억원 초과) 매출(40조691억원)과 영업이익(1조2459억원)은 각각 3.5%, 5.5% 감소했다.
자동차융합기술원은 현대차와 기아의 고급화 전략이 국내 부품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했다. 일반 가솔린 세단보다 비싸게 팔리는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날개 돋친 듯 팔리자 현대차그룹이 부품값을 넉넉하게 쳐줬다는 얘기다. 현대차의 1차 부품 협력사인 삼보모터스 관계자는 “현대차가 전기차 생산라인을 확대하면서 일감도 늘고 납품 단가도 올랐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올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각각 11%, 68% 증가했다.중소 부품사의 이익이 더 많이 늘어난 배경 중 하나는 지난해 10월 시행한 ‘납품 대금 연동제’다. 주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그에 맞춰 납품 대금도 올려주는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이 중소 부품사여서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자동차업계 영업이익률 서열은 ‘완성차-현대차그룹 계열 부품사-비계열 부품사’였는데, 최근 들어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부품사 R&D 투자도 늘어
상당수 부품사는 늘어난 납품 대금을 금고에 넣는 대신 미래차 부품 개발에 쓰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영업이익이 50% 이상 늘어난 한 중견 부품사 대표는 “넉넉해진 자금의 상당 부분을 전기차 부품 R&D에 투입했다”며 “자금 사정이 빠듯했다면 R&D 투자를 확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자동차융합기술원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올 상반기 100개 부품 기업 중 투자 실적이 있는 95개사의 R&D 투자액은 2조242억원으로 1년 전 97개사 1조8907억원보다 7.1% 늘었다. 중소 부품사(326억원→394억원)와 중견 부품사(1853억원→2000억원)도 마찬가지였다.보고서는 “현대차그룹 계열 부품사의 R&D 투자 비중이 전체의 53%에 달할 정도로 편중된 건 개선해 나가야 할 점”이라며 “완성차 업체가 차량 개발 초기 단계부터 부품 업체와 손발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의 실적 고공 행진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관세 폭탄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2.0’ 시대가 곧 열리기 때문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국내 부품사의 실적이 춤을 출 것”이라며 “미국이 한국산 부품에 10~20% 일반관세 부과를 강행하면 중소·중견 부품사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김재후/신정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