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학력 1위' 한국 국회, 신뢰는 꼴찌

한국 국회의원들의 학력 수준이 압도적인 세계 1위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56개국(2015~2017년) 의회를 조사한 결과 한국 국회의원 중 3분의 1 이상이 박사학위 보유자였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슬로베니아, 몽골 등이 한국 뒤를 이었으나 박사학위 소지자 비율이 25%를 넘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 집계는 20대 한국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수치지만 올해 선출된 22대 의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300명 중 103명(34.3%)이 박사 출신(수료자 포함)이었으며 126명(42%)이 석사학위를 취득했거나 수료했다. 나머지는 모두 대졸 출신으로 고졸 이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학력과 의정 성과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학사 이상의 학위를 보유한 정치인이 더 많은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더 오래 재임하진 않았다”며 “고학력자라고 실업률을 낮추거나 균형 잡힌 예산을 짜는 일에도 더 나을 게 없었다”고 전반적인 상황을 분석했다.이 평가대로 ‘긴 가방끈’은 한국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통계청이 매년 내놓는 ‘공공기관 신뢰도’에서 국회는 수십 년째 꼴찌다. 국제적으로도 한국 국회는 탈꼴찌가 목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1월 30개 회원국 국민을 대상으로 국회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28위에 그쳤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체코와 칠레뿐이었고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우리가 정치 후진국으로 보는 나라보다 신뢰도가 낮았다.

선거 때만 고개를 조아리고 당선 후엔 세계 최고 수준의 특권 누리기에 바쁜 여의도의 구태가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일부 극성 당원에게 휘둘리는 ‘팬덤 정치’와 타협 없는 ‘극한 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된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의 품격과 전문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상식과 합리를 외면하고 거친 막말을 쏟아내는 의원들이 각광받는 양상이 빚어졌다. 잦은 거짓말로 재판까지 받는, 웃지 못할 상황도 생겨났다. “고학력이 아깝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