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경영권 지킬 카드 여러개 준비 중" [한경 단독 인터뷰]

"배당 확대 계획 더 내놓을 것"
“게임은 아직 안 끝났다. 경영권 방어책을 여러 개 준비하고 있다.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17일 서울 청진동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공격으로부터 회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 회장은 “여러 사람을 만나 경영권 방어 전략을 짜고 있다”며 “동시에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설득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이 지난 13일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하자 MBK 연합이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MBK 연합과의 지분율 격차(4.5%포인트)를 뒤집을 ‘역전 카드’가 무산됐다는 이유에서다. MBK 연합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9.83%이고, 최 회장과 ‘백기사’를 합한 지분율은 35.33%로 추정된다.

최 회장은 “영풍과 MBK의 경영 능력을 감안할 때 고려아연 지분 20%를 보유한 ‘스윙보터’가 과연 그들을 선택하겠느냐”며 “국민연금(지분율 7% 추정)과 외국인투자자, 소액주주에게 고려아연을 잘 이끌 수 있는 경영진에 표를 달라고 설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똑같이 아연 제련업을 하는데도 지난 3분기 고려아연은 영업이익(1499억원)을, 영풍은 영업손실(179억원)을 낸 것만 봐도 경영 능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스윙보터를 끌어들이기 위해 기존에 약속한 배당 규모(손익의 30% 수준)를 더 늘리겠다고 했다. 그는 “조만간 배당 확대 계획을 추가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 일가 등의 지분 장내 매입과 백기사 추가 영입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두고 보자”며 즉답하지 않았다.

"20% 중간지대 주주 설득…경영권 방어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
경영권 방어 카드 준비 중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고려아연이 지난달 발표한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벌이는 경영권 분쟁의 변곡점이 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MBK·영풍 연합과의 지분율 격차(4.5%포인트)를 뒤집을 수 있는 반격 카드로 생각했지만, 여론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결국 고려아연은 지난 13일 유상증자를 철회했다. 17일 서울 청진동 고려아연 사옥에서 만난 최 회장은 17일 “유상증자 전에도 이길 확률이 60% 정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유상증자를 시도한 측면이 있었다”며 “주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한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놓고 2주 가량 우왕좌왕하는 사이 MBK·영풍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1.36%를 장내에서 매입해 지분율을 39.83%로 늘렸다. 그러자 시장에선 “MBK·영풍 연합이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는 관전평이 나왔다. 하지만 최 회장은 “아직 반격 카드가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돕고 있는 만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반박했다. ‘75년 공동 경영’에 마침표를 찍는 최종 승부는 이르면 연말께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다음은 이날 진행한 최 회장과의 일문일답.

▷MBK연합이 승기를 잡은 것 아닌가.“그렇지 않다. 최 회장측도, MBK연합측도 아닌 ‘중간 지대’에 있는 기관과 외국인, 소액주주 지분을 합치면 20%에 육박한다. 주총전까지 이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

▷MBK연합이 3%를 더 사면 끝 아닌가.

“MBK연합이 3% 더 사면 42.83%다. 주총에 참석하지 않는 주주가 많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슈가 있으면 참석률이 확 높아진다. 지난 3월 주총 때도 특정 안건 참여율은 90%를 넘었다. 다음 주총 참석률은 100%에 육박할 것이다.”▷주주를 설득할 방안이 있나.

“최윤범이 MBK연합보다 고려아연을 더 잘 이끌 것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경영자를 선택해달라고 설득하겠다.”

▷구체적인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주주 이익을 높여줄 거다. ‘소수주주 다수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사람을 이사회에 넣고, 특정 안건에 대해선 대주주나 특수 관계인을 제외하고 이들이 결정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소외받는 소액주주들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소수주주 다수결 제도는 특정 사안에 한해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배제하고, 소수주주 동의를 받아 의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거의 없다.

▷정관을 바꿔야하는데.

“주총 의결 사안이다. MBK연합이 취지에 공감해 동의한다면 곧바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배당 확대 계획은.

“얼마전 수익의 30%를 배당으로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도 30% 이상을 배당 등으로 돌려줬다. 이 숫자를 높일거다. 구체적인 수치는 곧 발표하겠다.”

▷유상증자가 부메랑이 됐는데.

“실망한 주주들에게 대단히 죄송하다. 유상증자 철회 기자회견을 연 것도 직접 사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회사를 키우고 이익을 내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 것이다.”

▷유상증자를 어떻게 결정했나.

“모든 일에는 소위 ‘똑똑한’ 방법이 있고, ‘현명한’ 방법이 있다. 이번에 ‘똑똑한’ 방법을 택했더니, 주주를 설득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주주가 동의하는 ‘현명한’ 방법으로 의사결정하겠다.”

▷현대자동차는 우호 지분인가.

“세계적인 기업을 이끄는 분들이 ‘최윤범’이라는 이름 하나만 갖고 고려아연에 투자했을리 있겠는가. 고려아연의 미래를 밝게 보고 투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들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주목을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우호지분이 아니란 의미인가.

“현대차와 LG화학, 한화는 고려아연이 그리는 2차전지 등 미래 사업의 청사진을 보고 투자한 것이다. 당연히 이들 사업을 누가 잘 그려나갈 지 생각하고 최윤범과 MBK연합 가운데서 선택하지 않겠는다.”

▷영풍의 조업정지가 논란인데.

“영풍과 고려아연의 가장 큰 차이는 경영 능력이다. 영풍은 지난 70년간 오염 방지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 2개월 조업정지 처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풍보다 훨씬 큰 고려아연을 이런 사람들이 경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MBK가 전문경영인을 뽑으면 되지 않나.

“MBK는 경영의 신이 아니다. 홈플러스, 네파 등 MBK가 인수한 뒤 실적이 나빠진 기업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술력이나 영업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전문기업인 고려아연을 MBK가 어떻게 이끌려는 건지 모르겠다.”

▷최 회장의 경영능력은 뭔가.

“2014년 자회사이자 만년 적자회사였던 호주 SMC 사장으로 파견돼 2018년 사상 최대 영업이익(7000만 달러)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 과정에서 태양광 시설을 적극 도입해 KWh(킬로와트시)당 10~30원의 전기료만 내고 사업을 운영하는 등 신사업도 키워냈다.”

▷2차전지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5000억원을 투자한‘올인원 니켈 제련소’는 중국 이외 지역에 세운 최대 규모의 니켈 공장이다. 연 4만2600t 생산 계획인데, 현대자동차가 주요 공급처 중 하나다. MBK연합이 반대하는 걸로 아는데, 이렇게 하면 성장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다.”

▷MBK와 영풍이 공개매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맺은 주주 간 계약이 논란이다.

“저도 영풍의 주주였지만, 주주 모두가 알 수 없는 베일에 쌓인 주주 간 계약은 배임 소지가 있다. 상장사인 영풍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을 이렇게 비밀리에 처리하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MBK연합을 최근에 만난적이 있나.

“최근에는 없다.”

▷앞으로 만날 계획은?

“언제든 만나고 싶다. 다만 협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집합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받아들일 수 있는 ‘휴전 조건’이 있나.

“MBK연합은 많은 지분을 보유한 고려아연의 주주다. 1~2명의 사외이사를 추가로 MBK연합 측에서 선임하고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자사주를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하다.

“아직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최근 사내복지기금을 만들었다. 여기에 회사 자금을 넣고, 고려아연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우호 지분을 만들 것이란 얘기가 있다.

“경영권 분쟁 때문에 만든 것은 아니다. 기금을 만들기 위해 2년 넘게 검토했고, 직원의 목지 증진 차원이었다. 혹시 우호 지분으로 활용을 하더라도 대세에 큰 영향은 없을 것 같다.”

▷지분을 더 살 계획이 있나.

“한다 안한다 명확하게 얘기할 수는 없다. 다만 만약에 경영진 또는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매입할 경우 5거래일 안에 공시가 된다. 실시간으로 중계가 될 것으로 본다.”

▷신사업에 투자할 여력 남았나.

“자사주 매입 물량이 예상보다 적어서 금융기관 차입 여력이 남아있다. 기존 자산을 매각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주총 표대결 '눈앞'…캐스팅보터에 달려
고려아연 지분 경쟁 어떻게…국민연금·소액주주 등 표심 중요

고려아연이 지난 14일 유상증자를 철회하면서 MBK-영풍 측과 고려아연은 이제 ‘기존 지분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의 주주총회 표대결만을 앞두고 있다.

17일 현재 지분율은 MBK-영풍 측이 약 4.5%포인트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공개매수에 이은 장내 매집으로 MBK-영풍의 지분은 이날 기준 39.83%로 추산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지분율은 베인캐피탈 및 우호 지분을 합해 35.33%가량이다.

MBK-영풍 측은 최근 법원에 고려아연 임시주총 개최를 신청했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주총 개최를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의 중대 사유가 없는 만큼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이사회 장악을 위한 주총이 열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관건은 국민연금 등 ‘캐스팅보터’들의 판단이다. 국민연금은 최대 7%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MBK-영풍과 고려아연 양측의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은 터라 결과를 뒤바꿀 만한 규모다. 당초 증권가에서는 국민연금이 다소 보수적인 결정을 해온 데다 현 경영진의 실적이 우수한 만큼 고려아연 측의 손을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으로 악화한 여론 등을 고려할 때 어떤 판단을 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5.5%가량의 소액주주 및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향방도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최 회장 측 우호 지분에 포함된 것으로 분류돼 있는 한화(7.75%), 현대차(5.05%), LG(1.89%) 등 재계 우군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앞서 우호 지분으로 분류됐던 한국투자증권도 보유 지분 0.8%를 장내 매도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자회사 한국프리시전웍스도 0.7%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경영진 간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화를 제외하면 추가 이탈자가 나올 수 있다.

김우섭/오현우/성상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