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국제 위기에 떠밀리듯 중책 맡은 여성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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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OTT 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외교관(The Diplomat)’드라마상으로는 가상의 지역으로 크리건이란 이름이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클라이드 해군기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클라이드 기지는 스코틀랜드 파슬레인이란 지역에 있고 영국 핵무기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서방 군사전략,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방어 전략에 매우 중요한 요충지인 것으로 보인다.
국제외교의 결정판을 보여 주다
넷플릭스 드라마 ‘외교관1, 2’의 핵심, 이야기의 모든 트리거는 바로 저기, 크리건에 있다.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저것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는 것을 미리 안다 해도 드라마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결국 그렇다면 누가 그랬냐는 것으로 돼 있다. 음모의 판을 짠 사람은 누구인지, 그 미스터리를 알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건 끝까지 잘 모르 돼 있다. 나중에 그 정체와 이유를 알게 되고 나서야 무릎을 치게 되지만 그것도 끝이 아니다.시즌1이 나온 지는 이미 꽤 오래됐고 그래서 시즌2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조차 내용이 가물가물할 수 있다. 영국(잉글랜드)의 전함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41명의 영국 해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성격이 불 같고, 제 멋대로인 데다(트럼프처럼) 독설가로 유명해서 오히려 그것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는 영국 총리 니콜 트로브리지(로리 키니어)는 기자회견에서 이건 이란의 짓이고, 그러므로 영국은 이란 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그런데 정작 긴장한 것은 이란이 아니고(이란의 런던 주재 대사는 영국 외무부 장관실에서 독살당한다.) 미국이다. 미국의 다 늙은(이건 조 바이든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레이번 대통령(마이클 맥킨)은 혹시 모르니 중동 대테러 전문가인 캐서린 케이트 와일러(캐리 러셀)를 런던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하고 총리 니콜을 이란과 충돌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아닌 밤중에 영국 대사가 된 케이트는 골칫거리 남편(본인의 외교관 경력이 탁월해 케이트를 조종하려 하는 등 배후 권력으로 나서기 때문) 핼 와일러(루퍼스 스웰)와 이혼의 갈등을 벌이면서 영국 전함에 대한 미사일 테러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한다. 케이트를 보좌하는 사람은 주영 미 대사관 공관 차석이자 2인자인 스튜어트 헤이퍼드(아토 에산도)와 CIA 런던지부장인 이드라 박(알리 안)이다. 시즌 1의 마지막은 케이트 대사가 영국 외무부 장관인 오스틴 데니스(데이비드 자시)와 파리에서 프랑스 장관을 만나고 있는 사이에 스튜어트 등 대사관 직원 둘은 부쩍 수상쩍은 행보를 보이는 대사 케이트의 남편 핼의 뒤를 추적 중에 모두 폭탄 테러당하는 장면이다. 시즌2는 이제 뭐가 뭔지 너무나 꼬이고 꼬여 엉망이 된 사건, 곧 미사일 테러 문제를 넘어 누군가가 배후에서 모든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연쇄 테러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으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과연 누구인가. 시즌2의 이야기는 여기에 집중된다.
시즌2는 중반까지 그 배후로 마가렛 로일린이라는 이름의, 영국 총리 고문을 지목하는 듯이 보이다가 다시 니콜 총리를 미사일 테러 자작극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몰아가는 척한다. 총리가 자국 군대를 향해 미사일을 쏘라고 했다고? 이야기는 미스터리의 소용돌이, 그 태풍의 눈이 담고 있는 서스펜스로 돌진해 들어간다.시즌2의 중요한 인물은 미국의 부통령 그레이스 펜(앨리슨 제니)이다. 그녀는 남편의 부패 스캔들로 사임 직전이다. 레이번 미국 대통령은 차기 부통령으로 ‘런던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지켜본 후 역시 여성 대통령으로 케이트 대사를 지명할 생각이다.문제는 레이번이 너무 늙어서 모든 판단을 백악관 비서실장인 빌리 아피아(나나 멘사)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삼각축, 그러니까 ‘레이번 대통령-아피아 비서실장-펜 부통령’의 삼각관계도 시즌2에서 매우 중요한 구도이다. 레이번 대통령이 너무 늙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잘 주목해야 한다. 시즌2의 마지막은 그 문제가 결국 폭풍을 일으키게 된다.
드라마 ‘외교관’ 시리즈는 마치 진짜 외교관들이 출연해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고퀄(리티)’이다. 이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 연방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은 잉글랜드 본토와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돼 있다.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북아일랜드를 직접 통치하고(각 지역에 행정수반이라는 직책의 자치령 총독을 두는 형식으로) 아일랜드는 독자적 국가로 인정하되 영국 왕실을 고리로 연방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잉글랜드=영국 입장에서는 늘 북아일랜드 독립과 궁극의 아일랜드 통일 운동을 추구하는 IRA가 문제이고 또 그만큼 골칫덩어리가 바로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운동이다. 드라마상에서 영국 총리 니콜과 그의 오랜 고문인 마가렛 로일린이 처한 상황이 바로 저 스코틀랜드 분리자들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칫 스코틀랜드가 넘어가면 웨일즈, 북아일랜드가 다 넘어간다고 그들은 본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 잠수함 기지 크리건이 중요하다.
저기가 무너지면 대러시아 방어전서 무너져 러시아의 핵잠수함이 북해를 거쳐 대서양을 횡단해 바로 워싱턴 D.C. 코앞으로 밀어닥칠 수가 있게 된다. 자, 그렇다면 얘기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영국 해군의 전함을 향해 미사일을 쏜 일당은 누구인가. 러시아 용병 마피아 렌코프인가. 렌코프에게 돈과 조직을 제공한 자는 어디인가. 이란인가, 러시아인가, 영국 총리 니콜의 자작극인가. 시즌2의 결론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다 끝이 난다. 시즌 3를 기다리게 만든다.데보라 칸이 쇼 러너 감독(일부 연출, 전체 프로듀싱)으로 이 시즌 드라마의 전체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비교적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외교 공관의 실제 모습을 그럴듯하게 재현시키고 있다. 그 세트와 미장센,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의 세공력이 절대 미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련된 국제정치학의 식견을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시대의 백악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런던의 다우닝가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미-영이라는 서방의 2대 강국이 지닌 속살에 어떤 흉터들이 숨겨져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외교라는 것, 국익이라는 것, 더 나아가 소위 국가를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정치인과 외교관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그 정체와 실체를 알게 된다. 이런 드라마는 백 퍼센트 지식인용 드라마이다. 세상에서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계층은 지식인들이며 ‘외교관’은 이들을 새롭게 개화하고 교화시킬 수 있는 촉매의 드라마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것은 다 하는 말들이다. 고매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척, 정치인들은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위해 살아간다. 그들을 국가와 민족보다 대중들, 국민들을 위해 앞장서게 하는 건 그야말로 ‘외교의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외교관’은 우리가 정치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들이 항상 ‘정치적 올바름’을 지니기를 기대하기보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실천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다른 거 다 떠나서 서스펜스(긴장감)가 최고인 작품이고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추적해 보는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엄청 재미있다. 게다가 시즌별 에피소드 회차가 6회씩 구성돼 있다. 시즌3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점이 가장 좋다. 한번에 일람, 정주행하기에 제격이다. 시즌 드라마는 이래야 한다.[외교관: 시즌 2 | 공식 예고편 | 넷플릭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