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으로 가득찬 고통 속, 서글픈 광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arte] 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中
'의상을 입어라'

전세계서 가장 많이 팔린 이탈리안 팝

불세출 테너 엔리코 카루소 이야기 담아

“인생의 모든 드라마에서
인간은 화장(化粧)하고 표정에 변화를 짓는다네.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카루소와 가장 알맞은 배역의 공연,
'광대'란 뜻의 오페라
생각나게 하는 노래의 한 대목
입신양명 立身揚名. 사회적으로 성공해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는 것을 말한다. 특히나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 그 대상이면 감동은 더하는 법. 오페라 애호가에겐 불세출 테너 카루소가 그 주인공이다.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태생. 7남매 중 셋째. 21남매 중 18번째라는 설도 있었으나 나중에 드라마틱한 과장으로 밝혀졌다.
불세출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1873~1921)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무지렁이 부모에 시골뜨기 카루소는 다행히 엄마 말을 잘 들어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 목사님에 눈에 띄어 어린이합창단을 들어갔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16세 때부터 교회 인맥으로 무료 레슨을 받아 가며 힘들게 성장했다. 마침내 1903년, 30세 때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데뷔 무대에서 베르디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을 노래함으로써 센세이션을 일으킨다.그러나 카루소 신화를 일으키게 된 결정적 계기는 독일 음반 회사 그라모폰(Grammophon)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카루소 전에도 명 테너들이 있었겠으나 우리는 그 목소리와 연주를 원천적으로 들을 수 없지 않은가. 1887년 독일 하노버 태생의 인쇄업자 에밀 베를리너(Emil Berliner, 1851~1929)가 녹음과 재생이 가능한 축음기와 150회전 음반을 발명했는데 공교롭게 카루소가 그 첫 수혜자가 된 것. 시대가 인물을 탄생시켰다고나 할까.
녹음,재생이 가능한 축음기와 150회전 음반을 발명한 에밀 베를리너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카루소가 자신의 목소리를 축음기를 통해 듣는 모습을 직접 그린 그림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1986년, 카루소는 죽고 나서 또다시 부활한다. 그의 사후 60여 년 지난 어느 날 이탈리아 싱어송라이터 루치오 달라(1943~2012)가 일을 냈다. 미국 투어를 마치고 들른 소렌토의 호텔 Grand Hotel Excelsior Vittoria. 그가 묵었던 방이 과거 카루소가 죽기 전 요양했던 곳이었음을 종업원으로부터 듣게 된 것이다. 48세의 나이로 죽음을 앞둔 카루소와 병문안을 자주 왔던 소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까지.
소렌토의 엑셀시오 비토리아 호텔에 카루소가 묵었다는 기념패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달라는 그 자리에서 영감을 얻어 하룻밤 사이에 가사와 작곡을 완성하고, <달라메리카루소(DallAmeriCaruso)>라는 앨범에 담았다. 바로 ‘카루소/Caruso’. 이 노래는 현재까지도 이탈리안 팝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기록적 음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래 ‘카루소’의 가사를 들여다보면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이유는 루치오 달라의 영감과 생전의 인간 카루소의 생각, 그리고 오페라 가수로서의 사랑과 열정이 마구 섞여 있기 때문이다.

유독 눈에 띄는 한 대목이 있다. “인생의 모든 드라마에서 인간은 화장(化粧)하고 표정에 변화를 짓는다네.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루제로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 1857~1919, 伊)의 오페라 <팔리아치(Pagliacci/광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17년간 총 863번이나 메트 무대에 섰던 카루소가 가장 배역과 일치된 공연으로 <팔리아치>가 꼽히기 때문이며 달라는 바로 이 부분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루제로 레온카발로(1857~1919)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연기할 시간이다! / 내가 광기에 취하는 동안에 /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다네 / 그러나 힘을 내야 한다 / 네가 인간이야? 너는 광대일 뿐! / 의상을 입어라! 얼굴에 분칠을 하자꾸나 / 관객들은 웃기 위해 여기 왔어 / 웃어라, 광대여. 그래야 박수를 받지 / 고통과 슬픔을 농담으로 바꾸려무나 / 아! 웃으려무나 광대여, 너의 깨어진 사랑을 뒤로하고 / 웃어라, 웃어라! 독으로 가득찬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는 아내 네다(Nedda)의 불륜을 듣고 마음이 찢어져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웃음을 머금고 무대에 서야 하는 광대의 운명을 노래한 ‘의상을 입어라(Vesti la Giubba)’의 가사다. 노래 초반, 자조에 찬 서글픈 웃음소리가 들어있는 이 독특한 아리아는 가히 카루소의 시그니처다.
팔리아치 역을 맡은 테너 엔리코 카루소(1910년경) / 사진=필자 제공
카루소는 48세의 생애 동안 498매 음반을 남겼는데, 특히 1904년 31세 때 미국 빅터(Vitor) 레코드에서 녹음한 LP는 나오자마자 백만 장을 돌파한, 음반 역사상 첫 밀리언셀러다. 카루소의 세 번째 부인 도로시에 따르면 카루소는 하루 2리터씩 물을 마셨고, 차와 우유는 입에도 안 댔으며, 하루 두 갑씩 이집트 산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고질적인 늑막염과 악화한 패혈증으로 죽었다.

[루치오 달라 & 루치아노 파바로티 - 카루소(Caruso)]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 오페라 <팔라아치> 中 ‘의상을 입어라(Vesti la Giubba)’]
[루치아노 파바로티 - 오페라 <팔라아치> 中 ‘의상을 입어라(Vesti la Giubba)’]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 명곡 '카루소'의 탄생 및 감상을 돕기 위한 참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