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을 향한 끝없는 집착··· 고흐는 그렇게 망상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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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동훈의 고흐로 읽는 심리수업고흐는 노란 집에서 고갱과 생활하며 일관성 없는 변덕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자신이 그동안 가졌던 생각보다는 불쑥 아무 말이나 내뱉는가 하면 무엇인가를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는데, 알고 보면 그것은 고갱이 한 말들이었다. 마치 내면에 자기가 없는 듯했다.
고흐의 인지부조화와 집착 그리고 편집증
고갱이 나쁜 짓을 꾸민다 비난하면서도
도망칠까봐 침실 앞 지키고 있어
고갱을 곁에 머물게 하기 위해 모성애 자극하는
그렸으나
실패하고 편집증 시달려
의 '불' 묘사는
당시 고흐가 환각 상태에서 본 것으로
상태가 심각했다는 것 보여줘
고갱 떠난 후 자책감으로 자신의 귀를 잘라
고흐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상당한 심리적 불편과 충격에 휩싸인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고흐는 자기 행동의 심각한 불일치 때문에 신경쇠약 증상을 보였고 예민해질수록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이제는 극단적으로 자신을 주장하는 편집증적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물로 나온 작품이 <오귀스탱 룰랭 부인과 아기 마르셀> (1888)과 <아기 재우는 여인> (1888~1889년)이었다. 이후 고흐는 모든 것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자 아예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고흐의 인지부조화와 집착
고갱은 고흐의 상충하는 태도, 즉 인지부조화에 주목했다. 이 사실을 베르나르에게 알렸다. “빈센트는 아주 이상하게 변해 가, 그것으로 혼란을 겪고 있어.”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불길할 정도로 조용해졌다가 이후에는 지나치게 퉁명스럽고 떠들썩하고, 또다시 이전처럼 조용한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고갱이 아를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주장하며 합동 전시회를 열자고 했다가, 바로 다음에는 분노하여 고갱이 나쁜 짓을 꾸민다고 비난했다. 고갱을 끌어당기고 동시에 배척하는 두 자아가 혼란을 겪으면서 이랬다저랬다 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또한 고갱과 말다툼을 한 날이면 그날 밤 고흐는 한숨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고갱이 한밤중에 도망칠까 봐 고갱의 침실 앞을 의심스럽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혼자 있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고흐는 고갱을 노란 집에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으로 엄마의 사랑을 자극하려고 했다. 피에르 로티가 쓴 소설 <아이슬란드의 어부>에 따르면 오랜 세월 항해하는 선원들은 대부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고자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위로를 얻는다. 주인공 또한 어릴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고갱은 이 소설을 좋아했으며 아를에서는 아이슬란드의 뱃사람들처럼 늘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이미 소설을 읽었던 고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갱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목말라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성애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성모 마리아상이 아이슬란드의 어부들을 대리 만족하게 했던 것처럼, 고갱에게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그림으로 보상하고 그리하여 그가 노란 집에 머물도록 하고 싶었다. 자신과 고갱의 침대를 요람 속 아이 그림들로 장식할 계획이었다.
고흐는 즉시 엄마와 아기 모델을 주변에서 찾았다. 아를에서 유일하게 가까이 지낸 사람들은 아를 기차역 우체국 관리였던 조셉 룰랭과 아내인 오귀스탱, 그리고 그들의 갓난이 마르셀, 십 대 아들인 아르망과 카미유였다. 고흐는 이 가족과 자주 모임을 가졌는데 마침 룰랭 부부가 막내 마르셀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이 가족은 노란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공동주택에서 살았다.고흐는 룰랭 부인과 막내딸 마르셀을 그렸다. 하지만 <오귀스탱 룰랭 부인과 아기 마르셀>에 보면 그림의 중앙에 아기가 주인공으로 나와 있고 엄마는 배경으로 물러나 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는 전통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지 않다. 성모자상과는 전혀 다른 구도,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온전한 희생에 완전히 탈진한 어머니가 그려져 있다.고흐 연구자들 또한 이것을 엄마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우선시했지만 완전히 탈진한 룰랭 부인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고, 갓 태어난 마르셀에게서 자신의 아기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신과 어머니와의 아픈 관계를 작품에 반영했다. 고흐는 <오귀스탱 룰랭 부인과 아기 마르셀>을 통해 희생에 지친 자신들의 어머니들이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을 이해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고갱이 자신과 함께 살았던 노란 집을 요람으로 생각하며 계속 아를에 머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편집증 - 나만이 나의 주인
하지만 고갱은 고흐의 기대와 달리 엄마와 아기의 그림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흐는 다시 초조하고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고갱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테오가 언제라도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이제 고갱을 향해 불신에 접어든 고흐는 고갱에게 주었던 수도사 풍의 자화상에 서명으로 남겼던 ‘벗에게’라는 헌사를 물감 용해제로 박박 지워 버렸다. 그러고 나서 고흐의 편집증(paranoia) 증세가 심하게 찾아왔다.
편집증은 불안이 원인이 되어 자기 생각이나 상상에 부합하는 해석을 하려고 하며, 이는 종종 현실을 왜곡하는 경향을 보인다. 과도한 의심과 불신, 그리고 타인의 행동에 대한 비이성적인 해석이 특징이다. 편집증 증세가 심한 고흐는 고갱과 테오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병세가 깊어진 고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성탄절 기간이면 매년 찾아오는 무서운 형상들로 괴로움을 겪었다.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 이런 환상은 대수롭지 않다고 애써 자신을 세뇌했다. 모파상이 쓴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이 불면의 밤, 신경쇠약, 이상한 상상에 빠지듯 자신도 그러한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곧 증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서서히 극심한 광기에 빠져들 듯 고흐도 점차 자기 감각이 현실인지 꿈인지 의심스러워졌다.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최면술사의 희생자가 되었거나 수수께끼 같은 이중생활을 하는 몽유병자가 된 것 같았다.
막연한 인지부조화에서 점차 편집증적인 두려움으로, 그다음엔 무서운 망상과 불면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떤 위협적인 기운이 자기 주위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보이지 않는 존재'는 그에게서 생기를 빨아들이고, 그가 잠든 사이에 칼을 꽂을 작정인 듯했다. 그 기운은 검은 옷을 입고 악마처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밤이면 그의 물을 마시고 고흐가 읽던 책장을 넘기고 거울 속에 반사된 고흐의 모습을 훔쳐봤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 존재를 고대 설화의 요정, 추한 난쟁이, 유령에 비교했었다. 이런 생각을 밤마다 하면서 고흐는 급기야 꿈이 두려워 잠을 못 자게 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고흐는 이미 이른 시기에 그의 좌절과 실패 속에서 신경쇠약 증상을 보였었다. 전도사 시절 적막한 황무지에서, 생활고로 시엔과 슬퍼할 때도, 벨기에에서 매독과 충치로 겪은 고통 속에서, 특히 테오와 친구들이 자신을 기만할 때처럼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때면 어김없이 예민해졌다. 흐린 날씨와 장기간의 식음 전폐, 순식간의 폭주는 여지없이 신경쇠약을 몰고 왔다. 신경이 이렇게 예민해지면 아주 사소한 놀림이나 거절조차도 격한 감정을 폭발시켰다.
신경 쇠약과 환각
며칠 동안 아를에 비가 내렸다. 차가운 겨울비였다. 고흐는 또다시 당시 최고의 독주였던 압생트를 마셨다. 술을 더 마시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동전 몇 개뿐이었다. 그 순간 동생이 그동안 보내준 돈이 이제는 한 푼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났다. 그에 대한 고갱의 무신경한 태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고흐는 이것을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느꼈는데 그것은 자신이 너무나 혐오하던 아버지의 방식이기에 더욱 신경질이 났다. 매일 심화하는 고갱과의 갈등에 대해 고흐는 “신경이 팽팽히 긴장되어 모든 인간의 정이 사라질 때까지 다툰다. 우리의 논쟁은 지독하게 격정적이다.”고 한탄했다. 고갱과의 갈등은 빠르게 통제 밖으로 치달았다.
이제 급기야 환각이 일어났다. 사람을 방에 가두고 건물에 불을 지르려 했으나 계획이 실패하자 누군가 자신에게 복수하려 한다는 환상이었다. 또한 아버지의 사후 매년 성탄절에 찾아오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고흐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모파상의 악마 오를라, 디킨스의 악령 레드로, 로티의 소설에서 물에 빠져 죽은 뱃사람들의 망령들, 그리고 아버지의 유령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죄책감과 두려움, 실패와 죽음이 떠올랐다. 급기야 성탄 절기인 12월 23일 밤,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점점 멀어져가는 고갱의 발걸음 소리에 공포감이 밀려온다. 고갱을 위해 자신이 열정을 쏟아 그린 <아기 재우는 여인>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치밀었다.이 그림은 고흐가 신경쇠약과 환각 중에 그린 그림이다. 아기를 안은 엄마는 두 눈을 괴이하게 뜨고 있다. 엄마의 무릎에 안긴 아기의 얼굴은 어른 얼굴이다. 엄마가 얼마나 불안하게 아기를 안고 있는지 떨어뜨릴 것만 같다. 그림 왼쪽과 아래쪽에는 빨간 불이 붙어 이글거리고 있다. 당장에라도 큰불이 날 것 같다. 고흐가 환각에서 봤던 건물에 불 지르려 했던 환영이 엄마와 아기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이 그림은 당시 고흐의 심각한 상태를 잘 보여준다.
이제 술을 마시고 침실로 향하던 고흐는 고갱의 방에 멈춰 섰다. 그가 떠난 후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욕실로 간 고흐는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봤다. 그 얼굴은 낯설고 달라져 있었다. 너무나 큰 자책이 휘몰아쳤다.
“나는 가족에게 실망을 안기고, 아버지를 해치며, 동생에게서 돈과 건강을 빼앗았다. 또한 남부 작업실에 대한 꿈을 망치고 고갱을 떠나보냈다. 나의 실패는 무겁고, 죄가 중한만큼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에게 귀가 잘렸던 한 사나이가 떠올렸다. 고흐는 면도칼을 집어 들어 그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고갱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그와 함께 지낼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다. 그날 밤 고흐는 잘린 귀를 헝겊에 싸서 평소 맘에 두었던 라헬이라는 여인에게 전했다.고흐는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신과 연결되려는 싸움에서 패배를 향했다. 붙들어 줄 밧줄도 없이, 결국 자기 망상의 세계에 갇혀버리고 만다. 고흐는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엔과 동거할 때도, 그리고 친척이었던 미망인 케이 보스와 그 아들과 함께할 때도, 그는 엄마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면서 치유의 길을 시작하기에는 상처의 골이 깊었다.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 깊이 빠져들고 만다. 고흐가 내면의 상처를 딛고 어렸을 적 자기 자신과 화해했다면 아마도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는' 삶을 택하지 않았을까?
김동훈 인문학연구소 ‘퓨라파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