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수렁에 빠진 제지업계 "터널 끝 안보여"

산업 리포트

원가 상승에 실적 고꾸라져
경기 침체에 물류비 뛰면서
4분기 반등도 기대하기 어려워

CEO 교체 등 비상경영 잇따라
사진=뉴스1
원자재 가격 인상과 경기 침체 여파로 국내 제지업체들이 신음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4분기는 신년, 새 학기 관련 수요 때문에 제지업계 성수기로 통하는데 올해는 관련 특수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펄프값 안정세가 이어지지 않는 한 올해 적자 기업이 속출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제지업계 1위 한솔제지의 올해 3분기 매출은 508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했다. 하지만 101억원 영업이익을 거둔 지난해 3분기와 달리 올 3분기에는 179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국제지도 3분기 매출이 196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0% 줄어든 5억원이었다. 태림포장, 깨끗한나라, 페이퍼코리아 등 업계 주요 기업들도 일제히 적자 늪에 빠졌다.제지업계 중 유일하게 선방한 곳은 무림이다. 무림 계열 3개 회사(무림페이퍼·무림P&P·무림SP) 실적을 더하면 3분기 매출 3741억원, 영업이익 87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1.9%, 27.9% 늘어났다.
업계 희비는 펄프 가격이 좌우했다. 제지업은 펄프가 원가의 약 60%를 차지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 가격 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미국 남부산혼합활엽수펄프(SBHK) 가격은 t당 605달러였는데 올해 6~7월 895달러로 1년 새 50% 가까이 치솟았다. 대부분 제지회사는 해외에서 펄프를 수입하는데 무림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림P&P에서 펄프를 생산해 종이 제조의 수직계열화를 일궈냈다. 그 덕분에 제지 생산 사업 부문에서 타사 대비 원가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뉴스1
문제는 3분기 저조한 실적이 4분기에도 좀처럼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제지와 인쇄 관련 업종에 훈풍이 부는 듯했으나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SBHK 가격도 지난달 기준 t당 690달러로 내려 비교적 안정화됐지만 해상 물류비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뛰어 수익성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디지털 전환 흐름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불어닥쳐 4분기 반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불황 여파로 각 기업의 달력, 다이어리 제작 의뢰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3분기의 저조한 실적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우려했다.

북미 지역으로 수출하는 주요 제지업체는 고환율 덕을 보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 이후 어떤 불똥이 튈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곳이 적지 않다. 일부 제지업체는 사령탑을 교체하는 등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한솔제지는 지난 1일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의 사위 한경록 부사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깨끗한나라도 공동대표 중 한 명의 교체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