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겹겹 규제 탓에 눈 뜨고 놓친 10조원짜리 방산 수출

K방위산업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호황기에 접어들었지만, 낡은 규제가 수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한경 11월 18일자 A1, 4면). 기술 판정, 기술수출전문위원회, 기술수출심의회, 기술 실시권 계약, 수출 허가 등 과정을 거치는 단계마다 요구 사항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까다로워 신속함이 생명인 방산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최근 10조원 규모의 호주 발주 호위함 사업 입찰에서 국내 방산기업들이 탈락한 것이 이런 규제의 부작용을 여실히 증명한다. 뛰어난 가성비와 건조 역량이 입증됐음에도 호주 측이 요구한 1만 장에 달하는 함정 정보를 국내 기업이 제때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탈락했다. 부품별로 방위사업청, 산업통상자원부,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에서 해외 반출 가능 승인을 일일이 받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기술 목록 제출 기한을 넘긴 것이다. 최종 후보에 오른 일본은 방위성이 수출을 통합적으로 관할해 신속하게 과정을 거치고, 정부와 기업이 팀으로 움직인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수출이 성사됐다고 해도 첫 단계인 기술 판정에만 1년이 걸리고 전 과정을 거치는 데 3년까지 걸리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방산물자 수출 시 건건이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한 방위사업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고 야당이 특정 국가 무기 수출에 발목을 잡기 위해 시간을 질질 끈다면 경쟁국에 밀리는 것은 물론 업계는 지체상금까지 물 수 있다. 정부가 방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기 개발에서 전력화까지 10~20년 걸리는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는 ‘신속 소요 프로세스’를 도입했지만, 역시 곳곳에 도사린 규제 때문에 제대로 착근하지 못하고 있다.

방산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지만, 과도한 규제로 인해 K방산 강점을 갉아먹는 일이 없도록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승인 절차 간소화를 위해 수출 가능한 품목의 목록을 작성해 두고, 여러 절차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일괄 평가 시스템 도입도 시급하다. 교육·기술·재정 등 패키지 지원도 필요하다. 방산 기술력 제고를 막는 최저가 입찰 방식 역시 보완해야 한다. 과거 내수 위주이던 시절 생겨난 낡은 규제의 틀로서는 방산 4대 강국 달성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