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라 믿었는데"…1억 넘게 빌려줬더니 '이럴 줄은'

SNS서 만난 외국인 연인의 '돈 달라'는 부탁
경찰 "외로운 사람 노렸다“

로맨스스캠 총책, 러시아 국적으로 파악
파병 미군, 군의관, 미국 유학생까지 사칭
14명으로부터 14억원 뜯어냈다
로맨스스캠 조직원이 피해자와 나눈 대화 내용 중 일부./사진=서울경찰청 제공
사기범죄가 국경을 넘나들며, 외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빙자 사기(로맨스스캠) 사례가 발생했다. 파병 미군이나 기업가 등을 사칭해 SNS로 친분을 쌓은 뒤 피해자들로부터 14억원을 가로챈 로맨스스캠 조직원 1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19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피해자 14명으로부터 총 68회에 걸쳐 14억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사기 등)로 국제 사기단 조직원 12명을 검거하고 이중 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국내 총책은 44세 러시아 국적의 인물로 파악됐다. 이들은 SNS 프로필에 가짜 사진과 경력을 게재한 뒤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해 대화를 유도했다. 이후 오랜 기간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 온라인 연인 관계로 발전시켰다. 전화나 영상 통화를 피하고 문자로만 대화했으며, 주로 외로움을 느끼는 심리적 취약계층을 노렸다.

피해자와 신뢰를 구축한 뒤에는 은행 계좌 동결 해제 비용, 택배나 통관비, 금괴 배송비 등 각종 명목으로 돈을 요구다. 이들은 허위 웹사이트를 만들어 피해자가 직접 택배 통관 정보나 배송비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치밀한 수법을 사용했다.
사진=서울경찰청 제공
경찰은 피해자들이 장기간 SNS 교류를 통해 형성된 감정적 유대감 때문에 쉽게 속아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피해자 A씨는 1억3000만원에 달하는 대출까지 받아가며 총 1억6500만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자신을 해외에서 근무하는 선박 조향사라고 소개한 사기범과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던 중, "짐을 보낼테니 통관비를 대신 납부해주면 나중에 갚겠다"는 말에 속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군의관을 사칭한 사기범에게 속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조직은 "UN과 우크라이나로부터 보상 받은 금괴를 보내려고 하니 대신 받아 달라"고 B씨를 속여 배송비 명목으로 1220만원을 편취했다.

경찰은 로맨스스캠 근절을 위해 범행계좌 지급정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로맨스스캠은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아 피해자가 계좌를 신고해도 지급정지가 불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대다수 로맨스스캠 범행에 사용된 계좌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출국하면서 판매한 대포통장"이라며 "체류기간 만료 후 출국한 외국인의 계좌에 대해서는 이용이 정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