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여성·고령자 고용 늘린 日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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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중기선임기자일본에 ‘출향(出向)’이라는 제도가 있다. 기존 기업의 소속을 유지한 채 자회사나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고용 방식이다. 주로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승진이 쉽지 않은 임직원이 대상이다. 일본제철은 출향자에게 급여의 70%를 지급한다. 나머지는 자회사가 부담한다. 출향자는 전문성을 살릴 수 있고, 중소기업 등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영입함으로써 인력난 해소와 경쟁력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이 제도를 통해 연간 40만~50만 명의 근로자가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일본은 2000년부터 은퇴 시기도 늦췄다. 법정 정년은 60세이지만 65세까지 정년 연장, 재고용,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의무화했다. 고령자를 최대한 경제활동 인구로 활용하려는 조치다. 정년이 지난 근로자의 90%가 재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다.
日, 고용 사각지대 해소 주력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이 특히 공을 들인 쪽은 여성이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해소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2015년 약 2만9000개였던 보육원과 어린이집은 지난해 4만 개로 늘었다. 보육원 비용은 이용자가 20%, 나머지 80%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지원한다. 출산, 육아 연령층에 속하는 일본의 30~34세, 35~40세 여성 취업률이 2000년 50%대였다가 지난해 80% 수준으로 개선된 건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꽤 오랜 시간 일본은 고령자와 여성이 주된 일자리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짜는 데 주력한 뒤에야 외국인 근로자로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시작했다.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우선 정년을 채우는 일부터 녹록지 않다. 한국의 퇴직 연령은 평균 52.8세다. ‘계속 고용 장려금’ 등의 지원에도 재취업의 길은 험난하다. 경력을 살리기는커녕 일자리의 질이 낮은 허드렛일을 전전하기 일쑤다. 60세 이상의 취업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지만 1년 미만의 근속률이 33%에 이른다. 고용 상태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얘기다.
우수한 내국인 고용률 높여야
여성 고용도 만만치 않다. 15~64세의 고용률(61.4%)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30~40대가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M-커브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경력 단절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육아 문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대의 45.3%, 40대의 42.9%가 육아를 감당하지 못해 일을 그만뒀다. 이들의 고용 불안은 결국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정부가 최근 일·가정 양립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 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저출생 등으로 청년 취업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고령자와 여성은 주요한 인적자원이다.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만 해도 954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절반 정도가 전문대졸자 이상의 고학력자다. 기대수명까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방치하는 건 크나큰 손실이다.물론 외국인 근로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인력난의 손쉬운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안일함을 경계해야 한다. 출산율과 여성 취업률을 늘리려면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 기대기 전에 보육 인프라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