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책대출의 뒷면을 살필 때

고금리에도 '줄줄이 영끌' 사태
가계대출 늘린 주역은 정책대출

정책금융기관, 부동산 금융 가세
통화정책 혼선 등 부작용 빚어져

'헛점 투성이' 대출 요건 강화
주금공·HUG 역할 재정립 필요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최근 정책대출 규모가 지속해서 증가해 주택시장과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에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장관 발언이다. 이럴 줄 알면서도 정책대출(디딤돌·버팀목)을 늘렸다고 실토한 셈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준 모양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적으로 한국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 안정화가 통화·금융당국 최우선 과제인 이유다. 가계부채 움직임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주도한다. 10월 가계대출 증가액(6조6000억원) 가운데 83%가 주담대(5조5000억원)다. 2000년대 초까지 부동산 금융 공급은 상업은행 몫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은 은행 차입을 줄이고 자본시장에서 직접 조달을 늘렸다. 그러자 은행은 가계를 상대로 주담대 취급을 확대했다. 담보가 확보되고 수익성도 높기 때문이다. 2004년 주택금융공사(주금공), 2015년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정책금융기관이 부동산 금융시장에 속속 가세했다.당초 부동산 금융의 수요 측면(주택저당채권 유동화)은 주금공이, 공급 측면(주택공급·도시재생사업 보증업무)은 HUG가 담당했다. 점차 두 기관은 업무 범위를 은행 영역이던 가계대출로 넓혔다. 현재 주담대 시장은 ‘은행·주금공·HUG’ 삼각 경쟁 구도다. 이러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불쑥불쑥 삐져나온다.

첫째, 정책대출이 통화정책 발목을 잡는다. 지난 9월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렸다. 한은은 금리 인하를 뒤로 미뤘다. ‘정책대출 급증’에 따른 빠른 가계대출 증가 속도. 한은 총재가 언급한 지연 사유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급증의 불똥이 통화정책에 옮겨붙었다.

둘째, 정책대출 차입자와 은행 차입자 간 형평성이 무너진다. 정책대출은 요건만 갖추면 받을 수 있다. 10월 주담대 중 디딤돌·버팀목(3조4000억원)이 은행 취급(1조5000억원)의 두 배 이상이다. 집값을 잡으려고 주담대를 줄일 때도 정책대출은 손대지 못한 채 은행만 압박하는 불공정이 발생한다. 주택 실수요자인 은행 차입자의 주담대를 막아 버리는 것이다.셋째, 가계부채를 줄일 기회가 정책대출 증가로 물 건너갔다. 2021년 연 0.5%이던 한은 기준금리가 2023년 연 3.5%까지 올랐다. 당연히 부동산 경기가 위축됐다. 가계부채를 줄일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 급락을 막는 수단으로 정책대출이 동원됐다. 2030세대가 정책대출을 종잣돈 삼아 ‘영끌 대출’ 대열에 앞다퉈 합류했다. 서울에서 9억원 이하 아파트가 실종됐다. 고금리 시기에 주택담보대출이 늘었다.

넷째, 정책대출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정책대출 수혜자는 은행 금리보다 2~3%포인트 낮게 빌린다. 이마저도 못 갚는 차입자가 속출한다. 올 상반기 보금자리론 ‘원금상환유예’ 신청(7510건)이 전년 상반기 대비 76% 증가했다. 버티다 보면 원리금 탕감도 기대할 수 있다. 원금 상환유예는 은행 차입자에게 상상할 수 없는 특혜다. 정책대출 공급자도 도덕적 해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딤돌·버팀목 대출은 은행 취급 주담대에 비해 대출 심사가 느슨하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적용도 배제된다.

무주택자·저소득층·신혼부부·출산가정의 주거 안정은 정부가 챙겨야 할 최우선 과제다. 다만 정책의 뒷면도 살펴야 한다. 2030세대가 정책금융 한도를 꽉 채워 주택을 사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 듯 보인다. 착시 현상이다. 정책대출도 갚아야 할 빚이다. 이자 부담에 짓눌리면 소비가 줄어든다. 주택경기가 활활 타는데 실물경기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정책대출 전반에 걸쳐 중간 점검을 할 시기다. 우선 대출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디딤돌대출 수혜 기준(연소득 8500만원)이 한 예다. 우리나라 중위소득은 3174만원이다. 중위소득보다 2.7배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서민이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주금공과 HUG도 설립 취지에 맞는 역할 재정립이 필요해 보인다. 두 기관이 업무 영역을 확장하면서 가계대출 공급에 중첩이 발생했다. 정책금융기관 간 불필요한 경쟁은 지양해야 하지 않겠나. 주금공은 부동산 가계금융, HUG는 부동산 기업금융에 특화한 본래 설립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