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여성성을 해체하기 보다 되찾아야 한다" [서평]

보부아르 삶 비판적 고찰
"페미니즘 열린 태도 필요"
여성성 기반으로 연대 강화해야
"세상의 여성들이여! 그대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전부 보부아르 덕택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사망한 1986년, 프랑스 철학자이자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옹호자 엘리자베스 바댕테르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시사 주간지에 이같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페미니즘은 보부아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보부아르는 페미니스트의 상징과도 같다. 그는 저서 <제2의 성>을 통해 전통 사회에서 만들어진 모성과 여성성을 과감하게 해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론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생전에 페미니즘 관련 사회운동과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김복래 안동대 교수가 쓴 <급진적 페미니즘>은 바댕테르를 비롯해 보부아르를 과도하게 우상화하는 태도에 반기를 든다. 이 책은 보부아르를 바라보는 신화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추적해 나간다.

저자는 보부아르가 개인적으로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지적한다. 양성애자였던 그는 생전에 자신의 학생들과 동성애 관계를 맺었다. 보부아르가 만난 상대는 계약결혼을 맺은 사르트르의 문하생부터 미국 작가, 기록영화 감독 등 저명인사, 자신의 여제자들까지 다양했다. 그는 "미성년자를 방탕의 길로 선동했다"는 죄질로 고소돼 교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보부아르에 대한 비판은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급진적 좌파 페미니즘이 남성 중심 사회의 괴물과 싸우는 동안 또 다른 괴물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여성 운동이 지나치게 호전적이고 윤리적 기반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여성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선 열린 토론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미래의 페미니즘의 여성성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여성 직업의 대부분의 전통적 여성 역할의 연장선 상에 있는 현실에서, 성역을 파괴하는 것이 진정으로 여성 권리 증진에 기여하는지 회의적이란 설명이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와 해방이란 근본적인 문제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공유된 여성성을 기반으로 여성 간의 연대를 강화해야 할 필요도 있다. 미국 코네티컷대의 심리학자 다이안 퀸은 114명의 여성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성희롱 관련 실험을 했다. 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성희롱적인 언행을 듣는 동영상을 보여주자, 실험 참가자들은 해당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성희롱을 당한 당사자 못지 않은 불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이처럼 동병상련의 여성 연대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부아르의 삶과 철학, 그를 둘러싼 논쟁거리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 책이다. 다만 페미니즘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엔 모든 독자가 동의하기 어려울 순 있겠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