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 옆에 줄리앤 무어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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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올해 나이 64세인 여배우 줄리앤 무어의 매력은 다름 아닌 주근깨이다. 여자들의 주근깨가 왜 생기는지는 모르겠고 그게 고민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주근깨가 예뻐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도 않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줄리앤 무어의 주근깨는 매력 포인트다.
매력적인 주근깨를 온몸에 덮고 있는 소녀,
대책 없이 선 넘는 배우 줄리앤 무어
걸작에 출연하진 않았지만
늘 가슴 뛰게하는 연기 해와
최근 잇따라 수작에 출연해
나탈리 포트만·틸다 스윈튼과
연기 경합 벌여
그녀의 주근깨는 어깨까지 나 있다. 그녀가 벗은 몸일 때, 시트로 가슴만 가리고 앉아 있을 때 주근깨가 어깨에 한가득 무늬로 일렁거리는 것을 보고, 그것참 특이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하여, 줄리앤 무어는 아직 주근깨 소녀다. 60대의 주근깨 소녀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영화에서는 대체로 두터운 분장이 그녀의 주근깨를 감추고 있고 난 꼭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뭐 내 생각일 뿐이다.줄리앤 무어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영화에 출연해 왔다. 어마어마한 걸작은 없을지 모르지만 늘 가슴을 쿵, 쿵, 쿵 때리는 연기를 해왔다. 줄리앤 무어 때문에 흘린 눈물은 지금까지 한 바가지 정도는 된다. 야한 역할도 많이 했다. 절륜의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걸작 ‘부기 나이트’(1999)에서 무어는 숙련된 포르노 여배우로 나온다. 영화에서 그녀는 포르노 업계 신참인 에디 애덤스(마크 웰버그)의 섹스를 이끈다.
역시 캐나다의 유명 감독(이었다가 지금은 사라진) 아톰 에고이앙의 ‘클로이’(2010)에서 줄리앤 무어는 남편의 정부인 여인과 잔다. 줄리앤 무어는 영화에서 도대체 너 뭐하는 짓이야,란 소리가 나올 만큼 대책 없이 굴 때가 있다. 줄리앤 무어는 영화 속에서 선을 자주 넘는다.근데 그걸 보고 있으면 그녀를 따라 사람들 역시 살짝 선을 넘고 싶어진다. 예를 들어 ‘에브리바디 올라잇’(2010)이란 영화에서 줄리앤 무어는 레즈비언이고 아네트 베닝과 각각 정자를 기증받아 낳은 아이 하나씩, 둘을 키우고 있는데 이중 아네트 베닝이 낳은 남자아이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 마크 러팔로를 찾아냈고 그런 소동 와중에 줄리앤 무어가 그 생부와 섹스까지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새로운 대(大)가족의 탄생이라는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레즈비언 커플인데다 자신의 양아들의 생부와 자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다. 청소년 유해 영화라고 공격받을 것이다. 줄리앤 무어는 청소년 유해 여배우일까. 그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할리우드와 유럽엔 이런 얘기의 영화가 많다.개인적으로 줄리앤 무어의 출연작 중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한참을 개봉하지 못하다가 10년이 지난 2016년에 마지못해 극장 상영이 이루어졌으나 ‘묵은지’ 취급을 당한 만큼 흥행은 당연히 ‘폭’망했다.시대 배경은 2027년으로 지금으로선 얼마 안 남았지만 2006년 개봉 당시에는 근미래의 SF영화였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임신하지 못한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불임인 세상. 아이의 웃음이 사라진 세상.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세상은 극단화된다. 뉴욕에서는 핵이 터졌고 서울은 수몰됐으며 도쿄에는 독가스가 퍼졌다. 유일하게 안전한 곳은 영국이고 세상의 난민들은 런던으로 몰린다. 당연히 런던은 수용소들의 지옥이 되고 사회는 특권 계급이 장악하고 지배한다. 이들에 대항해 저항군이 만들어지고 줄리앤 무어가 그들의 현명하고 고매한 지휘관 줄리언 테일러로 나온다. 세상에서 마지막 아이가 태어난 지 18년 4개월이 지났다. 한때 줄리앤 무어와 급진적인 사회 환경운동을 함께 했다가 변절하고 운동을 청산한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어느 날 옛 연인 줄리언이 이끄는 테러단에게 납치당한다. 줄리언은 납치해 온 테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여기서 처단당할래, 아니면 내 부탁을 들어 줄래.줄리언의 부탁이란, 기적적으로 임신한 한 흑인 소녀를 파시스트 정부 당국의 눈을 피해 런던 밖 안전지대로 데려가 인류의 후손을 잇게 해 달라는 것이다. 테오는 ‘와이 미?’,라고 줄리언에게 묻고 그녀는 즉답을 피하지만 그건 둘 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랑과 동지애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영화에서 줄리언이 죽는 장면, 줄리앤 무어가 갑자기 죽게 되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을 실로 깜짝 놀라게 만든다. 테오는 그녀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막으려 애쓰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후 테오는 죽은 옛 연인의 유지(遺志)를 지키려고 혼신을 힘을 다해 흑인 소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 한다. 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과 희생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알폰소 쿠아론은 이후 <그래비티>나 <로마>란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탔지만, 그 이전의 이 작품 <칠드런 오브 맨>이야 말로 진정으로 ‘한칼 한 솜씨’의 명작이었다. 아 참 줄리앤 무어 얘기를 해야지. 내 얘기인즉슨 줄리앤 무어만큼 지식인형 저항군 여성 지도자 역으로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이다.그럼에도 국내의 많은 여성의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든 것은 ‘스틸 앨리스’(2015)일 것이다. 그녀는 여기서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앨리스 역을 맡았는데 세 아이는 그 병이 유전되는가의 여부를 두고 말싸움을 벌인다. 못된 것들 같으니라구.
영화에서 앨리스의 눈물겨운 투병의 모습은, 죽음은 결국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그 숭고함을 회복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줄리앤 무어는 시한부 환자 역을 종종 했는데 ‘로렐’(2016)에서는 사랑하는 연하의 여인 엘리엇 페이지를 두고 암으로 죽는 여자 경찰 역을 했다. 영화의 기둥 줄거리는 오랜 공복인 경찰이었음에도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과 연금 혜택에서 제외되자 법정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둘 간의 애틋한 사랑, 나이 어린 여성을 사랑하는, 죽어가는 나이 먹은 여성의 모성애적 동성애가 심금을 울렸다.줄리앤 무어는 최근 들어 잇따라 수작을 내놓고 있는데 하나는 ‘메이 디셈버’고 또 하나는 ‘룸 넥스트 도어’이다. 여배우로서 이건 쉽지 않은 결정이고 또 한편으로는 숙명 같은 선택일 수 있다. 상대역 배우가 다 나름 ‘한칼 연기’를 한다는 나탈리 포트만과 틸다 스윈튼이었기 때문이다. 불꽃 연기 대결을 벌여야 했다는 얘기다.
아직 극장에 걸려 있는 ‘룸 넥스트 도어’에서 줄리앤 무어는 존엄사를 선택하는 친구의 옆방에서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여자로 나온다. 친구 틸다 스윈튼은 줄리앤 무어에게 자신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줄리앤 무어는 자칫 살인죄나 살인 방조죄로 몰릴 위험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 애쓴다.죽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힘들지만 죽으려는 친구의 옆에 있어 주는 것도 위대하게 힘든 일이다. 늘 죽음은 어려운 주제이지만 죽음 뒤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 역시 고상하고 지적인 자기 투쟁일 수 있다. 그 복잡한 심경을 표정 하나로 보여 주는 여배우가 바로 줄리앤 무어이다. 변방의 평론가가 그녀를 무한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 역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침상 옆에 줄리앤 무어 같은 여인이 있기를 희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줄리앤 무어는 죽음을 함께 하고 싶은 만인의 연인이다. 오늘의 결론이다. 꽝꽝!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