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거품 빼고 '초저가'에 판다더니"…대형마트의 '배신'

편의점·마트 '저가 PB' 가격까지 올랐다
이상기후發 원자재 랠리 여파

원재료 가격 인상 압박에
'PB는 인플레이션 방어용' 무색

노브랜드 초콜릿 30% 인상
국제 코코아값 2년 새 3배 급등
롯데마트 오렌지주스도 40%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후 위기가 촉발한 글로벌 원자재값 랠리가 국내 편의점·대형마트의 초저가 자체브랜드(PB) 가격마저 끌어올리고 있다. 초저가 PB는 유통업체가 소비자를 끌어오기 위해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인플레이션 방어용 상품’이다. 그런데도 가격을 올린 건 그만큼 원재료값 인상 압박이 크다는 뜻이다. 올 들어 소비자 물가가 꾸준히 오른 가운데 가계 부담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초콜릿·김 … ‘가성비’ 제품마저 인상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지난달 가성비 PB인 ‘노브랜드’의 ‘다크·밀크 초콜릿’(90g) 가격을 980원에서 1280원으로 31% 올렸다. 이마트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이 뛰어 부득이하게 가격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이마트24도 같은 이유로 지난 4월 초저가 PB인 ‘아임e’ 시리즈 중 ‘해바라기씨 초코볼’(48g)을 1200원에서 1300원으로, 7월엔 ‘5F 파르페 초코’(320㎖)를 3000원에서 3500원으로 인상했다.

이상기후로 국제 코코아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코코아 선물 가격은 t당 7747달러로 1년 전(4068달러)보다 90% 치솟았다. 2년 전(2450달러)과 비교하면 216% 올랐다. 코코아 주생산지인 서아프리카 4개국에서 가뭄과 폭우가 반복돼 생산량이 급감한 영향이다. 코코아뿐 아니다. 국제 오렌지 주스 선물 가격이 2년 새 파운드당 2달러대에서 5달러 가까이 치솟자 롯데마트는 5월 ‘오늘 좋은 오렌지 100% 착즙 주스’를 4990원에서 6990원으로 인상했다.

기호식품뿐 아니라 밥상에 자주 오르는 제품도 비싸지고 있다. 최근 K푸드 열풍으로 김 수출량이 급증하면서 도매가가 뛰자 이마트24는 ‘아임e 도시락김’을 400원에서 550원으로 38% 인상했다. 업계에선 수온이 따뜻해지면서 김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 올리브유 가격도 기후변화 여파로 급등해 롯데마트의 ‘오늘 좋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는 이달 2만1900원에서 2만4900원으로 인상됐다.

○이상기후發 고물가 계속될 것

PB 가격 인상은 고물가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PB는 자체 마진을 줄이거나 유통 과정을 축소하는 식으로 일반상품(NB)보다 가격을 대폭 낮춘다. ‘가성비’가 핵심 경쟁력인 만큼 유통업체들은 원재료값이 떨어지면 PB 가격을 내리기도 한다. 올초 이마트가 ‘노브랜드 중력 밀가루’(1㎏) 가격을 1480원에서 1380원으로 인하한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최근 PB 가격이 줄줄이 오른 건 그만큼 원재료 가격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PB가 아닌 일반 상품의 가격도 잇따라 오르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6월 국내외 초콜릿류 과자값을 5~15% 올린 데 이어 내년 상반기 해외에서 추가 인상할 계획이다. 오뚜기도 최근 카레, 짜장 등 가정간편식(HMR) 제품을 10% 올렸고, CJ제일제당도 ‘햇반컵반’ 시리즈를 14.3% 인상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발(發) 고물가가 심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와 유럽중앙은행(ECB)은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2035년까지 글로벌 식품 물가가 연평균 1~3%포인트 상승하고, 소비자 물가도 0.3~1.18%포인트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선아/라현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