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과징금' 엇갈린 판결…재량권이 갈랐다
입력
수정
지면A31
증선위, 불복소송서 2연속 패소 후 첫 승소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불법 공매도로 금융회사에 부과한 과징금이 적법했다는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앞서 외국계 금융사들이 잇따라 낸 불복 소송에서는 “과징금 산정이 과도하다”며 처분을 취소했지만, 이번엔 “공매도 위반은 시정이 불가능하다”며 과징금 산정이 적법하다고 봤다. 금융당국이 불법 공매도 처벌을 강화하는 가운데 법원에서 엇갈리는 판단이 나온 만큼 향후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직원 과실이 정당한 사유 안돼
증선위 재량권 일탈·남용 아냐"
앞선 금융사 2곳과의 소송에선
법원 "과도한 산정" 잇단 패소
7곳 소송 중…치열한 공방 예상
○“공매도는 주문만으로 위법”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고은설)는 지난 14일 퀀트인자산운용이 증선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퀀트인은 2021년 8월 SK아이이테크놀로지 보통주 5570주를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냈다. 총 11억6970만원의 주식이 공매도되자 증선위는 “공매도 규정을 위반했다”며 지난해 5월 3억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공매도할 주식을 확보한 상태에서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하고 있다.
퀀트인은 지난해 9월 법무법인 도담을 선임해 증선위를 상대로 불복 소송을 냈다. 퀀트인 측은 직원의 단순 착오일 뿐 매도를 통해 이득을 얻거나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매도 후 매도 분량을 재매수하는 등 시정조치를 했는데 증선위가 과징금을 줄이지 않은 것은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주장했다.재판부는 퀀트인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증선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상 금지하는 공매도는 ‘공매도의 청약 또는 주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퀀트인이 동종 주식을 매수한 것도 무차입 공매도의 거래 결제를 위한 조치로 시정 조치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특정 주식의 매도 위탁 주문을 입력하는 것은 기초적인 절차”라며 “직원 과실이 의무 위반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과도한 산정” vs “재량권 적법”
이번 판결은 최근 외국계 금융사들이 잇따라 승소한 것과 대비된다. 쟁점은 증선위가 재량권을 넘어선 과징금을 산정했는지다. ESK자산운용과 케플러는 “과징금 산정이 과도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정중)는 이달 초 ESK자산운용의 소송에서 “해외중개업체 실수로 호가가 중복으로 제출된 주식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며 38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취소했다. 같은 재판부는 8월 케플러 사건에서도 “실제 매도를 요청한 주식 수량은 2만9771주였으나 증권사에서 4만1919주에 호가를 낸 금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한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향후 소송에서도 공매도 과징금 산정 기준에 대해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케플러는 현재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이 사건을 심리 중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1년 4월 무차입 공매도 제재 강화 이후 올 9월까지 증선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건수는 총 44건으로, 이 중 7곳이 불복 소송을 하고 있다.법조계 관계자는 “퀀트인 판결은 공매도의 본질적 위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데 비해 ESK자산운용과 케플러 판결은 과징금 산정의 행정 재량을 제한한 것”이라며 “향후 소송에서도 위반행위 자체의 책임과 과징금 산정의 적정성은 분리돼 다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