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리더 500명 부른 류재철 "LG, 지금 방식으론 승리 못해"

한경 기사 보여주며 위기의식 촉구

"20년 전 우리가 1등 업체 추격
지금은 中 가전 거센 추격 받아
한계 돌파해야 앞설 수 있다" 주문

구독 사업 등으로 수익성 높일 듯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이 지난 8일 경남 김해의 한 리조트에서 생활가전사업부 소속 임직원에게 2004년 6월 11일자 한국경제신문 기사를 보여주며 “LG전자가 중국 가전업체로부터 추격받는 모습이 과거 일렉트로룩스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LG전자 제공
지난 8일 경남 김해에 있는 한 리조트 대강당. LG전자 H&A사업본부(생활가전)의 팀장급 이상 임직원 500여명이 모인 워크숍 현장에 마련된 큼지막한 스크린이 한 기사로 가득 채워졌다. 기사 제목은 ‘백미러에 LG가 보인다.’ 2004년 6월 한국경제신문에 보도된 기사다. 당시 세계 최대 가전업체였던 일렉트로룩스가 이런 내용을 사보에 게재하며 전 직원에 ‘한국기업 경계령’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이날 연설자로 나선 류재철 H&A사업본부장(사장)은 “이 기사에서 일렉트로룩스를 LG전자로, LG전자를 하이얼 등 중국기업으로 바꾸면 그게 바로 요즘 글로벌 가전시장의 판도”라며 “20년 전에는 LG가 일렉트로룩스를 추격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에 쫓기는 입장이 됐다”고 했다. 류 사장은 “지금의 방식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 방식으로 경쟁 승리 못해”

이날 워크숍은 류 사장이 주재한 ‘GIB)Go Into Battle)’ 행사의 일환이었다. GIB는 그해 나온 문제를 강도 높게 반성하고 내년도 목표 달성 의지를 다지는 H&A사업본부의 리더십 워크숍이다. 마치 전장에 들어서는 장수의 마음으로 사업에 임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류 사장이 ‘한계 돌파’를 주문한 것은 중국 가전을 단순한 저가 공세로만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지난 1년 6개월간 중국 현지 실사와 정밀 분석을 통해 중국 가전 업체들의 기술력을 들여다봤다. 그 결과 한국 기술 격차가 상당히 좁혀졌고, 오히려 중국이 앞서는 분야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류 사장은 설명했다.

로봇청소기뿐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가전 등 핵심 제품에서도 중국의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게 류 사장의 판단이다. 류 사장은 “가전 제조 실력만 보면 중국업체들의 실력은 LG전자와 맞먹는다”며 “직접 중국제품을 접한 뒤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 위협하는 中가전

류 사장은 한국 제품을 베끼기 급급했던 중국 업체들이 지금은 오히려 기술을 선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가전업계 미래 먹거리인 빌트인(내장형 가전)이 대표적이다. 빌트인은 주변 가구와 간격을 좁히는 것이 기술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인테리어와 조화가 중요하고 주변 가구와 간격을 좁히면 내부 공간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얼의 빌트인 냉장고는 옆 가구와 간격을 업계 평균(20mm)의 5분의 1 수준인 4mm로 좁혔다. 좁은 틈에도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기술을 통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중형차인데 어떤 차는 내부 공간이 크고 다른 차는 작은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가전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에너지 효율’에서도 중국기업들이 앞서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출품된 하이센스 냉장고의 에너지효율은 유럽에너지등급(ErP) A 등급 대비 30% 전력을 덜 소모한다. 같은 등급에서 한국 업체들은 25% 전력을 덜 소모한다. 에너지를 덜 소모한다는 것은 모터와 부품 성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류 사장은 “가전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중국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치자”고 강조했다. 제2의 ‘구독 사업’처럼 가전 관련 서비스를 강화해 새로운 캐시카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구독은 일반 제품 판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익이 창출돼 수익성이 높다.

LG전자 가전 구독 매출은 올해 1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