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바이든의 '원자력 밀당'…中 시진핑이 대안?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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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는 지난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농축 우라늄의 대미 수출을 일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한 것에 대한 맞대응 조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정부 회의에서 "그들(서방)은 우리에게 많은 상품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며 "우라늄, 티타늄, 니켈 등 전략 원자재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미국과 러시아는 농축 우라늄 수입-수출 관련 '예외 조항'을 두며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금수 조치 법안에는 다른 곳에서 공급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 특별 허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놨다. 러시아의 수출 제한 조치에도 "러시아 연방 기술·수출 통제국에서 발행한 일시적 라이선스가 있는 경우에는 미국에 농축 우라늄을 수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왕립연합군사연구소(RUSI)의 다랴 돌지코바 연구원은 "2022년 프랑스의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수입 가치와 물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2023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미국 내부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의 공급망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러시아로서는 농축 우라늄 수출이 정부 재정의 주요 재원이다. 해외 판매량을 유지해야 푸틴 대통령의 통치력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UxC 데이터에 따르면 농축 우라늄 현물 가격은 최근 파운드당 80달러 가량을 기록했다. 작년 초 미국의 제재 도입 가능성으로 106달러까지 급등했던 것에 비해 안정화됐다. 러시아의 수출 제한 발표에도 농축 우라늄 가격이 변동성을 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유틸리티 기업들이 이미 갖고 있는 재고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팬뮤어 리베룸의 톰 프라이스 분석가는 "농축 우라늄 시장만큼 전체 공급이 재고에 의존하는 시장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 유틸리티 업계가 보유한 재고가 이미 교체 연료 조립체를 공급하는 데 사용되고 있어 미국은 유럽 농축업체로부터 수입을 대폭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농축 우라늄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능(AI) 열풍에 의한 전력 수요 급증으로 인해 핵에너지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힌지 대표는 "AI와 소형모듈원자로(SMR) 관련 기술이 확산된다면 현재 연료 시장은 이 새로운 수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다시 촉발된 양국 간 긴장은 농축 우라늄의 글로벌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려는 결정은 전 세계 농축 우라늄의 무역 흐름을 큰 폭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첨단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농축 우라늄 공급망에서는 오히려 손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돌지코바 연구원은 "중국이 2022년 이후 러시아로부터 농축 우라늄 수입을 늘렸으며, 이는 미국으로의 수출 증가를 동반했다"면서도 "현재까지 공개된 데이터만으로 이러한 공급망 대체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친(親)푸틴'으로 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귀환이 양국 간 긴장을 줄이고 핵연료 협상에서 출구를 모색할 수 있게 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