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크리에이터 손끝에서…용감한 지도자로 성장한 소녀 모아나

개봉 앞둔 모아나2의 숨은 주역
디즈니 韓 애니메이터 윤나라

오스카상 '페이퍼맨' 보고 디즈니행 결심
엘사·올라프·주디 등 다양한 캐릭터 작업
겨울왕국 이름 듣곤 처음엔 촌스럽다 생각

해외서 보낸 어린 시절…힘든 경험도 많아
"디즈니 만화, 제게 있어 삶의 나침반이었죠"
“내가 갈 길을 알아. 나는 모아나(I know the way. I am Moana)!”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하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명가로 불리는 건 1923년 설립된 이후 단순히 1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버텼기 때문만은 아니다. 디즈니 예술의 핵심은 세대와 성별, 문화를 초월한 ‘공감의 힘’이다. 그 중심엔 캐릭터에 대한 ‘창조적 파괴’가 있다.모투누이섬 부족장의 딸 모아나가 대표적이다. 모아나는 언젠가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를 기다리거나, 운명에 순응하고 사랑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공주 클리셰’를 깨뜨린 여성 영웅 서사를 보여준다. 흰 피부와 고운 머릿결 대신 강렬한 태양 아래서 거친 파도에 뛰어드는 폴리네시아 문화권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곱슬머리마저 재밌다.

이런 모아나가 2016년 이후 8년 만에 또 한 번 먼바다로 모험을 떠난다. 올해 글로벌 영화계 최고 흥행작인 ‘인사이드 아웃 2’를 뛰어넘는 글로벌 사전 예매량을 기록했다. 국내 개봉일은 오는 27일. ‘모아나2’ 제작현장의 K크리에이터로 불리는 한국인 애니메이터 윤나라 씨를 최근 인터뷰했다. 그는 모아나 1편부터 ‘겨울왕국’ 시리즈, ‘주토피아’ 등에 참여한 디즈니의 숨은 주춧돌이다.
▷‘모아나’는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모아나적 사고’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모아나2는 전편과 비슷한 가족, 모험, 영웅적 행위를 다뤄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16세 소녀 모아나가 아니라 ‘모투누이 추장’ 모아나가 용감한 지도자로서 태평양의 새로운 길을 탐험하고 괴물들과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주로 모아나와 마우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새로운 캐릭터도 일부 맡았습니다.”

▷디즈니에서 가장 중요한 ‘누구나 공감하는 스토리텔링’을 함축하고 있는 건 캐릭터죠. 그간 어떤 캐릭터를 만들었습니까.

“엘사, 안나, 올라프(이상 겨울왕국), 닉과 주디(이상 주토피아), 미라벨(엔칸토) 등 꿈 같은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디즈니에 오기 전 드림웍스에선 포(쿵푸팬더), 슈렉 같은 캐릭터를 애니메이션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자면 엘사일 것 같아요. 겉으론 교만할 수 있지만, 주위 사람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자상한 캐릭터죠.”▷‘애니메이션 명가’에서 주요 캐릭터를 디자인하게 된 한국인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드림웍스에서 6년간 일하다 군 복무를 위해 휴직했습니다. 2013년 전역을 앞두고 디즈니의 ‘페이퍼맨’이라는 단편 영화가 오스카상을 받는 걸 봤어요. 전통 2D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이 반영된 3D 애니메이션이 너무 멋졌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 안의 열정이 살아났습니다. 사실 ‘겨울왕국’이라는 영화를 작업하게 될 것이란 얘기를 듣고 처음엔 그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느낀 기억이 나요.”(웃음)

▷디즈니만의 차별적인 기술력이 있습니까.“독특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 개발에 힘써요. 당장 ‘모아나’에선 근육질에 다양한 동물로 변신하는 캐릭터인 마우이를 만들기 위해 근육까지 애니메이션해야 했어요. ‘겨울왕국 2’에선 보이지 않는 정령인 게일이란 캐릭터가 나오는데, 나뭇잎 몇 장과 주위 물체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투명 캐릭터를 연출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늘 새로운 도전이 주어지지만, 기술팀과의 협업이 디즈니의 마법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어린이만의 콘텐츠는 아닌 것 같습니다.

“디즈니가 고유의 예술성과 높은 품질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지만, 제게 있어선 ‘옳고 그름’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해왔어요. 어린 시절 해외에서 자주 이사 다니며 살았고 늘 새로운 환경에서 힘든 경험이 많았는데, 부모님이 매주 비디오 대여점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를 빌리는 걸 허락한 기억이 나요. 얼핏 보기엔 단순한 만화에 불과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모험으로 얻는 추억과 교훈이 세대를 초월해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