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국 주식 낮 거래 '블루오션 독점' 구도 깨진다

美 핀테크 기업 '에이펙스' 등 내년 진출
국내 증권사 '협력' 위해 지분 투자 검토 중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신민경 기자
이르면 내년 하반기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주간 거래'(낮 거래)가 원활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미국 주식 주간 거래를 독점으로 맡은 대체거래소(ATS) '블루오션' 외에 다른 현지 정규·대체거래소가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증권사는 ATS에 대한 지분 투자도 고려 중이다.

신생 기업부터 NYSE까지…'서학개미 모시기' 채비

22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미국 현지 핀테크 기업인 에이펙스(APEX)가 이르면 내년 하반기 '미국 주식 주간거래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하고 국내 증권사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APEX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KB증권을 비롯한 국내 복수의 증권사에 지분 투자를 제안했다. 사실상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낮 거래를 독점한 '블루오션'보다 원천 데이터 이용료 등 더 나은 계약 조건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KB증권 관계자는 "대체거래소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검토를 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국내 대상 주간 거래 서비스를 준비 중인 곳은 APEX뿐만이 아니다. 최소 네 곳의 미국 정규거래소·대체거래소가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장외시장인 OTC마켓은 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지난 15일 거래시간을 대폭 늘린 'MOON ATS' 인가를 받았다. 현지 거래소가 한국시간 기준 낮 거래를 중개하기 위해선 거래시간을 늘려야 한다. APEX와 OTC마켓은 블루오션처럼 '대체거래소' 인가를 받아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그 밖에 보다 엄격한 당국의 허가와 관리를 받는 미국 '정규거래소'들도 출격을 준비 중이다.

미국의 24EX(24EXCHANGE)는 오는 29일 미 SEC로부터 정규거래소로 인가받을 예정이다. 24EX는 미국 헤지펀드 거물인 스티브 코헨이 이끄는 '포인트72 벤처스'의 투자를 받은 신생 기업이다.

미국 뉴욕증시의 대표 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도 거래시간을 기존 16시간에서 22시간으로 늘리기로 결정하고 SEC 인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국내 증권사 관련 업무 관계자 이야기를 종합하면 NYSE는 내년 상반기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대체거래소, 정규거래소할 것 없이 미국 업체들이 낮 거래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아시아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수요가 계속 커진 영향이다. 이들은 한국 등 아시아 증권사와 계약을 맺은 뒤, 미 새벽 시간에 넘어오는 거래 주문을 받아 체결하고 수수료·차익거래 수익을 가져간다. 특히 '미국 주식 열풍'이 거센 한국 투자자들이 현지 업체들엔 탐나는 시장이다. 한국 홀로 블루오션 주간 거래량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블루오션 독점 → 다자 경쟁체제로

한국처럼 미국과 밤낮이 바뀌어 있는 아시아의 투자자들이 낮에도 미국주식을 거래하려면 블루오션 같은 미국 현지 거래소의 도움이 필요하다.

본래는 한국시간 기준 정규시장(오후 10시30분~오전 5시)과 프리마켓(오후 5시~오후 10시30분), 애프터마켓(오전 5시~오전 9시) 때만 미국주식을 매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국내 대부분 증권사가 블루오션과 제휴하면서 서학개미들은 주요 활동 시간인 낮 시간대에도 거래할 수 있게 됐다.블루오션은 미국 현지에서 유일하게 야간거래를 승인받은 대체거래소였기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로서는 선택지가 한 개뿐이었다. 증권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오전 11시~오후 4시30분까지 미국 주식 주간거래가 가능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지난 8월5일 글로벌 증시 급락이 빚어진 '블랙먼데이'를 계기로 블루오션 독점 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증시 급락으로 주문이 대거 몰리자 블루오션은 들어온 모든 거래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블루오션에 문제가 생기면 매매주문을 낼 수 있는 다른 거래소가 없어 국내 모든 투자자의 주간거래가 막히게 되는 셈이다. 당시 금융감독원 집계 기준 9만여 개 계좌에서 6300억원에 달하는 대금 거래가 취소돼 제때 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오션은 지난 4월에도 '거래량이 많다'는 이유로 주간거래를 조기 종료한 적도 있다.

이처럼 블루오션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해도 지금까지는 주간 거래 독점 체제인 탓에 국내 증권사들로선 적극 대응이 어려웠다. 사태 이후 증권사들 연합인 금융투자협회가 블루오션에 재발방지 대책과 책임을 물었지만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회신 없이 낮 거래가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한 증권사 해외영업부서 관계자는 "이번 블루오션 사태로 민원과 시스템 대응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며 "서학개미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새로운 ATS와 거래를 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블루오션의 독점체제를 깰 경쟁자들이 생겨 내년 하반기부터는 건강한 경쟁이 시작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