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예기금 고갈 위기, K컬처의 붕괴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한강 작가를 이 시점에서 다시 소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문화예술진흥기금(문예기금)의 재정 고갈 위기 문제를 목도하게 되면서다. 사실 문예기금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용어일 수 있으나, 예술가처럼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를 비롯하여 소위 ‘K컬처 생태계’에서는 보통명사와 같은 개념으로 통한다.

이것은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일종의 ‘시드머니’(종잣돈)로서 그 역할과 활용도가 지대한 문예기금이 갖는 의미와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한강 작가가 오늘의 위치에 자리하게 된 데에는 작가 개인의 문학적 열정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문학 작품을 생성해내는 작가적 기반 형성에 문예기금이 일정 부분 기여한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문화예술 창작의 근간이 되는 순수예술(기초예술) 분야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문예기금을 활용한 사업의 영역은 문학, 시각예술(미술), 연극, 무용, 전통예술, 창작오페라 등 다양하다. 한강 작가는 창작 활동을 본격화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국가 문화예술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해 작품 발간지원 사업, 해외레지던시프로그램 참가지원 사업 등 총 18건에 7,7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모든 지원금이 문예기금에서 지급되었다. 특히 한국문학 세계화 사업과 해외레지던시프로그램 참가지원 사업 등은 한강 작가가 자기 작품을 세계 무대에 알리면서, 동시에 세계 문학계의 조류를 현장에서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한강 작가의 사례는 문예기금 순기능의 일단이자 가시적인 지원 성과의 하나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외에도 문예기금 제도가 만들어진 1973년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연극, 음악, 미술, 무용, 국악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순수예술 지원 사업과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 등에 문예기금이 투입되었는데, 그 규모가 4조 3,200억 원에 달한다. 이러한 순수예술 분야 지원이 드라마, 영화, 대중음악 같은 ‘K컬처’로 불리는 대중예술 장르의 성장과 발전에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정부가 문화예술 선진국 도약을 본격화하면서 문화경쟁력을 천명하고 있지만, 문예기금은 오히려 재정적 위기에 내몰려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다. 바닥을 드러낸 문예기금의 재정 고갈은 데이터에서 확인된다.

2004년 5,273억 원에 달했던 문예기금 적립금은 이후 계속 줄어 2023년 말 현재 626억 원으로 20년 사이에 마이너스 80%를 기록하고 있다. 근본적인 재원 확보 방안 없이 매년 정부 일반회계와 복권기금, 체육기금 등 외부 기금을 끌어다가 ‘연명’하면서, 한편으로는 부족한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갈에 직면한 적립금을 털어 사용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 기금이 아니었다면 벌써 청산하고도 남았을 만큼 기형적인 재정 구조로, 이대로 가면 2~3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은 설득력을 지닌다. K컬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문예기금이 재정 고갈에 직면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공연장, 전시장, 고적 및 사적지 입장료 6% 모금으로 기금을 조성토록 한 방식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이후 연 400억 원 규모의 기금 모금이 원천적으로 차단됐고, 이에 따른 대체 재원 발굴도 소극적이었으며, 핵심적인 국고 지원 사업 일부를 문예기금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기금 운용에 재정적 제약이 초래된 것 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문예기금 고갈과 불안정한 재원을 일개 기금의 재정적 위기 정도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문예기금 지원을 받는 국가 기초예술 분야 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고, 이는 창작의 위기로 이어져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종국적으로는 순수예술이 퇴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주면서 K컬처 붕괴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문예기금 재정 고갈을 방치하면서 외부 기금 등 정부 전입금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재원 구조는 향후 재원 안정화 방안을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혁신해야 한다.

문예기금 전입금 중 비중이 가장 높은 복권기금을 법정배분화하거나, 현행 교육세 일부를 문화예술세(가칭)로 전환하는 등의 특단의 대책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역할은 오롯이 정부와 국회의 몫이다. 어떻게 쌓아 올린 K컬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