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만난 한지공예, 팝아트로 해석한 민화…다시 태어난 전통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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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 '알고 보면 반할 세계'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미술계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조선시대 민화(民畵)를 팝아트와 접목해 다시 그리거나, 전통공예와 온라인게임 IP(지식재산권)를 결합한 전시들이 수도권 곳곳에서 열리면서다.먼저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선 민화 특별전 '알고 보면 반할 세계'를 지난 15일 개최했다. 전통 민화 27점과 이를 재해석한 현대미술 102점을 미술관 건물 2층 전관에 걸쳐 대규모로 전시했다. 권용주 김상돈 김지평 임영주 최수련 등 국내 현대미술가 19명이 참여했다.이번 전시는 민화와 현대 팝아트간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민화는 조선시대 서민들이 일상을 기록하거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데 활용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향유한 그림 양식으로, 대중문화가 확산하던 1960년대 발생한 '대중예술(Popular Art)'인 팝아트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 경기도미술관 측의 설명이다.전시장 입구에 걸린 '포도도(葡萄圖)'는 민화와 현대미술 사이의 형태적인 유사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다. 다산의 상징인 포도와 이를 탐스럽게 먹는 다람쥐를 가로 4.7m 길이에 걸쳐 그린 10폭 병풍이다. 전시를 기획한 방초아 학예연구사는 "포도의 덩굴이 둥근 궤적을 그리며 규칙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기호학적 형태가 반복하는 현대 추상화의 기법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민화 원본과 현대 팝아트 130여점 비교
덕수궁 '시간의 마법사: 다른 세계를 향해'
넥슨 IP 활용한 장인들의 수공예품 전시
민화의 원본과 여기서 영감을 얻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하기 좋다. 골동품을 진열하던 장식장을 그린 '다보각경도(多寶閣景圖)' 옆에는 해당 장식장을 입체적으로 옮긴 오제성 작가의 설치작품이 놓였다. 이수경 작가는 현대사회 여성들을 불교 탱화(幀畵) 기법으로 그렸고, 김지평 작가는 눈이 셋 달린 요괴 '삼목구(三目狗)' 이미지를 차용한 채색화를 내놨다.작가들이 재해석한 민화에는 변화한 시대상이 반영됐다. 김은진 작가의 '신의자리_인산인해 2'는 전통 자개 공예 기법에 따라 제작됐는데, 아름다운 장식과 상반되는 꺼림칙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가정 안팎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현대판 심청이'들을 묘사한 작가의 자서전적인 작품이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서울 덕수궁 덕홍전에서 열린 '시간의 마법사: 다른 세계를 향해'는 전통공예와 게임 IP를 결합한 전시다. 넥슨재단의 사회공헌사업인 '보더리스'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보더리스는 게임과 다른 문화예술 장르의 융합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로, 올해 협업 대상으로 권중모 김동식 김범용 등 전통공예가 10명이 선정됐다.
게임과 전통공예를 연결하는 키워드는 '빛'이다. 1887년 한반도에 전기 발전소가 처음 도입된 장소인 덕수궁이 전시 장소로 채택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조혜영 총감독은 "게임에서 빛은 특정 세계를 구현하는데 중요한 요소"라며 "장인들이 만든 조명이 켜지면서 다른 차원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고 설명했다.덕홍전 입구를 밝히고 있는 작품은 금속공예가 김석영의 '월컴 조명'이다. 출시된 지 20년이 넘은 '바람의나라',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 등 게임의 역사를 보여주듯 인위적으로 부식된 효과를 입혔다. 마치 온라인 게임의 관문인 '포탈'처럼 전시장 내부로 관객을 이끄는 효과를 연출한다.
말총공예가와 매듭장, 염장(대나무와 갈대 등으로 발을 만드는 장인) 등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의 백미는 한지 조명디자이너 권중모의 '빛의 음영'이다. 한지를 접으며 생긴 자연스러운 음영이 얇은 창호지 사이로 비치는 덕홍전 창살과 한 몸처럼 어우러진다.작품 속에 숨겨진 게임의 상징물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마비노기의 게임 캐릭터 '모닥불 정령'에서 영감을 얻은 김석영의 '모닥불 조명', 메이플스토리를 상징하는 단풍잎 모양의 빛이 반짝이는 김범용 유기장의 '성스러운 빛' 등이다. 전시장의 QR코드를 통해 작품들에 얽힌 비밀을 게임 퀘스트처럼 풀어낼 수 있다. 전시는 다음 달 1일까지.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