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는 스타일 어디로…의아한 한동훈의 침묵 [이슬기의 정치 번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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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이해 힘든 정치인의 언행을 국민의 언어로"제가 저 자리에 있거나, 제가 저 비슷한 자리에 있거나, 저 근방 1km 안에 있었으면 저는 뭐 걸겠습니다. 의원님은 뭐 거시죠? 의원님 저는 다 걸게요. 의원님 뭐 거시겠어요? 저는 법무부 장관직 포함해서 앞으로 어떤 공직이든 다 걸겠습니다. 거시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의혹 제기에 "직 걸겠다" 초강수로 주목받아
비대위원장 시절에도 '건건이 신속 대응' 했는데
게시판 논란은 2주가 지나도록 말 아껴 '의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년 전 법무부 장관 시절,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에 내놨던 반응입니다. 터무니없는 의혹 제기에 '직을 걸겠다'며 발끈하는 그의 모습은 정치권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황당한 감정과 함께 불쾌감까지 드러내며 '발끈'하는 모습은 오히려 그의 '결백을 강하게 주장하는 모습'으로 국민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이후 한동안 "직을 걸겠다"는 초강수가 진정성의 표현으로 정치권에서 유행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을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8월 내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통과시켜 준다면 민주당이 원했던 과방위 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장제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건희 여사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결정 과정에 관여한 사실이 있다면, 장관직뿐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는 등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직을 걸겠다"는 발언은 '한동훈 팬덤'의 시작이 됐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정치인 데뷔'를 한 이후 이런 '톡' 쏘는 스타일은 더욱 돋보였습니다. 한 대표 이전까지 '의사 결정 구조가 복잡하고 느린' 국민의힘의 스타일을 '신속한 대응'으로 개선했다는 평가도 다수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경우 전 비대위원의 '노인 비하' 논란에 하루 만에 비대위원을 사퇴시키고 대한노인회를 찾아 고개를 숙인 일입니다. 김호일 노인회 회장이 "한 위원장은 내가 (비판) 성명을 내니까 신속하게 하루 만에 그 사람을 해촉하고 민첩하게 하니까 '대응하는 게 확실히 다르구나. 젊은 분이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의혹이 제기되면 논란이 커지기 전에 재빠르게 진화에 나서는 모습도 자주 보였습니다. 지난 1월 민주당이 한 위원장이 입은 '1992' 맨투맨에 대해 억지 비판 논평을 냈을 때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반박 논평을 냈고, 이준석 의원이 한 위원장을 향해 던킨도너츠와 커피로 '이미지 메이킹'을 기획했다는 주장을 폈을 때도 즉각 반박했죠.
'언론 대응이 느리다'는 것은 한동훈 체제 이전까지 국민의힘의 취약점 중 하나로 비판받아온 지점이었기에, 그의 이런 스타일은 당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가 '신속한 대응'을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질질 끌지 않는 것'이 한 대표의 스타일이었기에 이번 당원 게시판 논란에 대한 그의 대응에 더욱 물음표가 찍힙니다. '당원 게시판' 논란이란 지난 5일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한 대표의 부인·장인·장모 등 가족 이름으로 윤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글이 700여 건 올라온 것이 확인되며 시작됐습니다. 당원 게시판은 실명 인증을 거친 당원만 글을 쓸 수 있으면, 본래 게시자 이름은 익명 처리되고 성만 노출돕니다. 그런데 최근 전산 오류가 나면서 작성자 이름이 그대로 노출되며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2주가 지나도록 지지부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대표는 '한동훈' 이름으로 올라온 당원 게시판 글에 대해선 '한 대표가 아니다'고 하면서도, 가족에 대해선 '맞다 아니다 설명할 이유가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없는 분란을 만들어서 분열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 (11월 14일)
"위법이 있다면 당연히 철저하게 수사되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건이 대응하지 않는다" (11월 21일)
"어제 충분히 말씀드렸고 그걸로 갈음해달라" (11월 22일) 평소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그의 평소 언어와 온도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가족이 썼다' 혹은 '가족이 쓰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오히려 그의 스타일에 가깝다는 것은, 그의 화법에 익숙한 기자들이라면 동의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입니다. '건건이 신속 대응'하는 것은 분명한 한 대표의 장점 중 하나였습니다.
한 대표가 '공작 사주'라며 열을 올렸던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의 사례와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김 전 행정관이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와 나눈 통화 내용이 보도되자 "우파 리더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진영 범죄"라며 즉각 진상조사를 지시했고 "필요한 경우 법적 조치를 진행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했습니다
한 대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하지만, 평소 그의 화법에 익숙한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점점 더 어리둥절해집니다. 당원 게시판 논란의 핵심은 불법이나 위법 여부가 아니라는 것에 한 대표는 공감하지 않는 걸까요?
당원 게시판 논란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온갖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 대표의 말처럼 "변화와 쇄신을 실천할 마지막 기회"에서 당원 게시판으로 헛심을 쓰는 셈입니다. 한 여권 관계자도 이에 대해 "이번 논란이 한 대표 리더십에 타격을 줄 수도 있어 걱정이 되기는 한다"면서 "왜 이렇게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지 솔직히 영문을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