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비둘기와 우정 덕분에 집 밖으로 나온 어느 동물 보호 운동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천국

재난 현장의 동물은 누가 구할까
비둘기 덕에 은둔 생활 끝낸 저자
동물 보호가로 변신해 세계 누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총성이 끊이지 않는다. 홍수와 지진 또는 대형 산불 같은 자연재해도 늘고 있다. 참혹한 비극의 현장에서는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그들을 향한 여러 구호의 손길이 이어진다. 참사 현장에서 가장 먼저 살려야 하는 대상은 당연히 ‘사람’이다. 희생자를 수습하고, 부상자를 치료하고, 더 이상 피해가 이어지지 않도록 당장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다면 재난 현장에 있던 ‘동물’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던 수많은 생명체의 고통은 누가 돌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옥 같은 재난 현장에서 동물은 늘 뒷전일 수밖에 없다.
출간 전부터 이미 대단한 입소문을 일으킨 책 <세상에서 가장 슬픈 천국(Der traurigste Himmel auf Erden)>의 인기가 대단하다. 독일에서 11월 20일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기록하면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책에는 ‘비둘기 아버지’라고 불리는 저자가 전 세계 재난 현장을 누비며 위기에 처한 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바깥세상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집 밖으로조차 잘 나가지 못했던 말테 치에르덴이 어떻게 용기를 내서 동물 보호 운동가가 됐는지, 또 어떻게 ‘동물 보호’가 자신이 사명이 됐는지 소개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동물들의 생명을 살리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해줄 것을 권한다.

첫 시작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22년 초 화장실에 있는 작은 창문 쪽으로 찾아온 비둘기가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던 말테의 친구가 됐다. 말테는 오스카(말테가 비둘기에게 지어준 이름)를 위해 창틀에 작은 집을 만들어줬고, 손바닥에 먹이를 올려 건네주면서 사랑스럽게 돌봐줬다. 말테와 오스카의 특별한 인연은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지금은 틱톡에서만 1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말테와 오스카 듀오의 일상을 팔로하고 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모인 자금으로 말테는 해외 곳곳에 버려진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 보호소와 임시 거처를 만들어주고 있다.저자는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조하는 긴박한 여정을 생동감 있게 전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5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피해 장소에서, 그리고 무서운 불길로 휩싸인 튀르키예 산불 현장에서, 저자는 동물구호단체와 함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수많은 동물의 생명을 구해냈다.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동물들은 죽음을 무릅쓴 이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황도 있었지만, 말테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물들의 고통을 보듬었다.

저자는 동물 보호 운동가가 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포함해 동물권에 대한 생각과 감정, 구호 과정에서 경험한 놀라운 동물들과의 감정 교류에 관해 털어놓는다. 인간과 가장 가까이 살고 있지만, 언제든 쉽게 버려지거나 잊힐 수밖에 없는 존재인 동물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지금도 곳곳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위태로운 동물들의 SOS가 들리는 듯하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