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고2 교실, 교과서 필기 대신 토론 오갔다

학습자 주도형 'IB학교' 경북대사대부고 가보니

교사가 학생들과 대화하듯 수업
사고력 높은 인재 키우는데 초점
토론토대·UNIST·연대 등 합격도

대구교육감 "대입 불리하지 않게
총장들 IB 이해도 높일 학회 개최"
지난 19일 ‘국제 바칼로레아’(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학제로 운영되는 경북대사범대학부속고 2학년 10반 학생들이 류언아 교사의 지도에 따라 ‘지식이론’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대구교육청 제공
“죽음을 다양한 학문적 관점으로 이야기해볼까.”

지난 19일 대구 중구 대봉동 경북대사범대학부속고 2학년 교실에서 ‘지식이론’ 수업을 하던 교사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 학생은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원소가 분해돼 다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봤고,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죽음의 순간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어요”라고 답했다. 약 50분간의 수업시간 내내 일반 고등학교에선 듣기 어려운 대화가 오고갔다. 학생들은 이날 지식을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결합하는 훈련을 이어갔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은 없었다.

점차 확산하는 IB 학교

경북대사대부고는 2021년 ‘국제 바칼로레아’(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인증을 받아 학년별로 2개 학급이 IB 학교로 운영된다. IB 학교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인 IB 기구가 인증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토론과 논술 등에 참여해 창의력과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수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11개 시·도에서 총 473개교(후보 포함)가 이 같은 학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경기가 163개교로 가장 많고, 대구 98개교, 서울 80개교 등 순이다. 전북 28개교, 경북 24개교, 충남 19개교 등 지역에서도 일부 운영 중이다.

경북대사대부고에서는 추첨을 통해 IB반에 들어갈 아이를 선발하고 있다. IB 학교에서는 일반적인 교과 과정이 아니라 ‘IB 디플로마 프로그램’(DP)을 이수한다. 1학년 때는 일반 교육과정 학생들과 과목, 수업 방식을 공유하며 방과후 수업을 통해 DP 준비 과정을 거친다. 이때 2·3학년 수업의 근간이 되는 독서, 글쓰기, 수학 공학용 계산기, 과학 실험 설계 등을 교육받는다.

2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DP가 시작된다. DP는 그룹1~6으로 나눠 총 6개 수업을 듣는다. 그룹 내 선택과목도 있다. 구체적으로 △언어와 문학(국어) △언어 습득(외국어) △개인과 사회 △역사·생명과학·화학·물리학 중 한 과목 △수학 분석과 접근 △예술 등이다. 여기에다 핵심요소 수업인 지식이론(TOK), 소논문(EE), 창의·활동·봉사(CAS) 등 세 과목이 추가된다.IB 학급 2학년 10반에 재학 중인 배경린 학생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에 갔을 때 건물 옥상 위 인피니티풀을 보고 건축학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됐다”며 “스스로 탐구하는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어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좋은 취지에도 빠른 확산이 어려운 것은 IB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원이 귀하기 때문이다. IB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가르칠 수 있는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 교육 결과물인 소논문, 에세이 등 채점을 맡을 전문 교사도 필요하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심화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모시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국내 대학도 문호 개방해야”

IB 학교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현행 입시 제도다. 학교에서 수능을 일절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최저 등급 기준이 있는 대학에는 수시로도 지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올해 첫 3학년 졸업자를 배출한 경북대사대부고는 양호한 대학 진학 실적을 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포함한 다양한 전형으로 국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고, 해외 대학 지원은 오히려 더 수월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번 졸업생들은 캐나다 토론토대, UNIST(울산과학기술원), 연세대 등에 합격했다.국내 대학들이 IB 학교에 좀 더 문호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은희 대구교육감은 “지금도 최저 기준이 없는 대학들 위주로 입시를 안내하고 있지만, 해외 우수 대학에 붙은 학생들이 정작 국내 대학에 떨어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IB 학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주요 대학 총장들을 모시고 관련 학회 세미나를 여는 등 각종 정책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