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중심 대학시스템 바꿔야…학생 선발, 학교 자율에 맡길 때"

월요 인터뷰 - 유홍림 서울대학교 총장

미래에 필요한 역량은 협력
전문성 가진 인재 모여 소통해야
기숙사 수용률 50%까지 확대
1학년 기숙사 생활 의무화 검토

'최대 투자, 최소 규제' 원칙을
기업이 대학에 대한 투자 늘리고
커리큘럼·인턴십까지 관여해야
필요한 인재 직접 길러낼 수 있어

바이오메디컬에 제일 관심
넓은 의미 관련 교수가 1000명
국가 기여할 세계 경쟁력 갖춰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글로벌 톱10 대학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형택 기자
“서울대의 위기는 패스트 팔로어를 키워내는 교육 방식에 안주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가 처한 상황에 대한 냉철한 자성과 함께 개혁 구상을 털어놨다. 그는 “패스트 팔로어를 양성하는 가성비 좋은 산업화 시대의 교육 방식은 퍼스트 무버를 길러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며 “앞으로 10년간 치열한 혁신과 투자를 해야 글로벌 톱10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서울대가 앞장서 미래 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유 총장의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의 ‘최대 투자, 최소 규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학을 믿고, 자율성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유 총장은 “대학이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역할은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열어주는 기능이며 이를 위해서는 시행착오도 필요하고, 자유가 제일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는 전 세계 대학 순위에서 30~60위의 박스권에 갇혀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그간의 교육 방식이 ‘패스트 팔로어를 키워내는 데 가성비 좋은 교육’이었기 때문입니다. 규격화된 인재를 대량 생산해 한국의 경제 발전에 역할을 했지만 퍼스트 무버를 키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통과 협력입니다. 과거에 유용했던 지식이 미래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복합 위기와 불확실성 시대에 이를 해결할 역량을 갖춘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이렇게 10년 정도 치열한 혁신 노력과 투자를 한다면 글로벌 톱10 대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새로운 수업 방식을 도입했습니다.“‘베리타스(veritas) 수업’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지식 전달보다 토론과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입니다. 여러 전공 교수가 협업해 커리큘럼을 짜고, 거대 담론에 대해 한 학기 동안 각자 답을 찾아가는 방식입니다. 리더십, 삶의 의미 같은 철학 담론부터 환경위기 등 복합 위기와 관련한 이슈까지 30여 개 주제를 정해 진행합니다.”

▷학생들의 기숙사 생활 비중도 높인다고요.

“최소한 1, 2학년은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해서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과 생활하고, 소통하게 할 계획입니다. 현재 학부생의 기숙사 수용률이 20~30%인데 이를 50%까지 올리는 게 목표예요.”▷공간이 충분한가요.

“기숙사 재건축을 이미 시작했습니다. 1학년은 강제화하고, 이후는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한국은행은 서울대 지역인재 선발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공감합니다. 이미 서울대는 지역균형전형, 기회균형특별전형 등을 시행 중입니다. 다만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제약이 해소돼야 합니다.”

▷어려운 점은 없나요.

“선발 단위가 학과 등 소규모일 경우 여기서 지역인재를 추가로 뽑는 것은 쉽지 않죠. 또 블라인드로 학생을 선발하는 현 상황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서울대는 자대 교수 비중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교수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성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대 교수의 25%가 타교 출신이고, 여성 교수가 20%에 달합니다. 장기 목표를 앞서는 성과입니다. 특히 여성 교수는 2030년 30%까지 늘릴 겁니다.”

▷대학 등록금이 10여 년간 동결됐습니다.

“등록금 인상 권한을 학교에 돌려줘야 합니다. 대학들도 등록금을 무작정 올리지 않을 겁니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할 겁니다.”

▷등록금 인상으로 재정 문제가 해결될까요.

“등록금은 부차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와 기업이 대학에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특히 기업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일방적인 기부나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인재를 키우는 데 장기적으로 투자해달라는 뜻입니다.”

▷산학협력을 확대하려는 건가요.

“산학협력은 매우 기초적인 방법입니다. 올린공대, 미네르바대 등은 프로젝트 등을 통해 학생들이 기업과 학부생 때부터 소통하는데 이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좋은 방법입니다. 대학 커리큘럼부터 인턴십까지 보다 깊이 들어와야 합니다. 신입사원을 처음부터 다시 교육하면서 대학에 불만을 제기하는 대신 관여하라는 뜻입니다. 인재는 대학이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 사회가 같이 키워야 합니다.”

▷대학 발전을 위한 선행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규제 중심의 대학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투자는 최대로, 규제는 최소로 하는 ‘자유와 신뢰의 혁신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대학을 믿고, 학생 선발 등에 자유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교육부가 정해놓은 미래에 대학을 맞추는 관료제적 운영방식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습니다.”

▷서울대가 제일 관심을 쏟는 연구 분야는 무엇인가요.

“바이오메디컬이 대표적입니다. 의대를 비롯해 수의대, 약대, 자연대(생명과학), 농생대, 병원까지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교수 2300명 중 넓은 의미의 바이오메디컬 교수가 1000명에 달합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가적으로 가장 기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양자, 인공지능(AI), 항공우주, 모빌리티(조선해양) 등도 서울대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이들 집중 연구 분야에서 어떤 점을 주목하나요.

“서울대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그것이 서울대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죠. 국가와 사회, 크게 보면 인류를 위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런 거대 서사(grand narrative)가 없으면 개인의 행위를 제어하는 방법이 돈과 강압 같은 천박한 형태밖에 남지 않습니다.”

▷2022년 국가미래전략원을 세운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맞습니다. 한국은 싱크탱크 생태계가 부족해서 중요한 국가 방향을 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프로젝트, 브루킹스, 후버연구소 등을 벤치마킹했죠. 6개 아젠다에 대한 리포트를 내고, 포럼을 개최해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공계 인재 잡으려면 사회적 공헌 인정을"
유 총장 "병역 등 인센티브 필요"

“이공계 인재 유출의 가장 큰 원인은 인센티브 부족입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24일 인터뷰에서 이공계 핵심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과학자에 대한 대우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에 남는 것보다 미국 빅테크 등 해외로 진출했을 때 더 높은 연봉을 받기 때문에 대학이 붙잡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이공계보다 의대를 선택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대에서 제출받은 ‘최근 3년간 서울대 신입생 자퇴 현황’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1학기까지 서울대를 자퇴한 신입생 611명 가운데 공대 소속이 187명(30.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농과대 127명(20.8%), 자연대 76명(12.4%) 순이었다. 유 총장은 “연봉뿐 아니라 과거에 비해 유명무실화된 이공계 병역 혜택 등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 이공계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연구자가 연구기관에서 연구개발(R&D) 활동을 하며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현역병 복무기간 단축 등의 영향으로 지원자가 지속 감소하면서 올해 상반기엔 전체 배정인원(2300명) 대비 충원율이 40.8%에 그쳤다.유 총장은 인센티브 확대와 함께 사회적 공헌을 평가해주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교육과정이 원자화된 개인을 중시하면서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교육을 통해 자아를 확장해야 한다”며 “자신이 속해 있고 혜택을 받아온 공동체, 조직, 국가와 스스로의 정체성을 연결하고 공동선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해갈 것”이라고 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