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美 재무장관 산실, 월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 호황을 이끌며 미국 최고 재무장관 중 한 명으로 꼽힌 로버트 루빈은 월가 출신이다. 그는 골드만삭스 회장 시절 ‘아칸소 촌뜨기’였던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경제 교사 역할을 했다. 그 인연으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거쳐 4년 넘게 재무부를 이끌었다. ‘아들 부시’ 대통령 때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도 직전까지 골드만삭스 회장이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티머시 가이트너는 재무부 관료 출신으로 전형적인 월가 출신은 아니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지내며 월가와 불가분의 관계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2016년 대선 때 월가에 비판적이었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월가의 대변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하자마자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재무장관에 골드만삭스에서 잔뼈가 굵은 스티븐 므누신을 임명해 4년 임기를 함께했을 뿐 아니라 재무부 부장관에도 골드만삭스 출신을 앉혔다.트럼프의 ‘월가 사랑’이 이번엔 달라지나 했지만 아니었다. 트럼프는 집권 2기 초대 재무장관으로 헤지펀드 키스퀘어그룹 최고경영자(CEO) 스콧 베센트를 지명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월가맨을 낙점했다. 베센트는 트럼프의 관세 인상에 찬성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서서히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무장관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가 공격적인 관세 인상을 지지하는 것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재무장관으로 베센트를 지명한 것은 관세 인상을 원하는 지지층과 관세 인상의 충격을 우려하는 시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월가의 우려를 의식한 조치라는 것이다. 베센트가 상원 인준을 거쳐 재무장관에 오르면 최근 10명의 재무장관 중 4명이 월가 출신으로 채워진다. 미 중앙은행(Fed) 의장 제롬 파월도 한때 대형 사모펀드 칼라일에서 일했다. 호불호를 떠나 여의도 출신 경제부총리나 한국은행 총재는 꿈도 꾸기 힘든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