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구역 5곳 중 1곳 소송…수도권 주택 공급 '발목'

노후 주택 단지와 아파트 재개발·재건축을 위해 지정한 수도권 정비구역 5곳 중 1곳에서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비사업에서 벌어지는 소송이 주택 공급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국토교통부가 손명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수도권 전체 정비구역 554곳 중 103개 구역이 소송 중이었다. 서울은 419곳 중 81곳(19.3%)이 소송을 벌이고 있다.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한 총 32건의 분쟁을 조정하는 데 평균 548일이 걸렸다.

정비구역 5곳 중 1곳 소송…소송에 발 묶인 정비사업
수도권 주택 공급 '발목'

인천 미추홀구 주안4구역 재개발은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갈등을 겪으며 최근 사업이 멈춰 섰다. 지상 최고 35층 아파트로, 13개 동을 올려 1856가구를 공급하는 재개발 사업이다. 그러나 공사비 110억원 인상을 놓고 조합과 시공단이 대립각을 세우며 문제가 불거졌다. 사업에 속도가 나지 않자 급기야 조합원들은 집행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갈등이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조합원들은 연일 쌓여가는 금융비용에 발을 구르고 있다.

24일 국토교통부가 손명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수도권 정비구역 약 5곳 중 1곳에서 소송이 진행되면서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발목 잡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서울 아파트 공급의 70%가량을 차지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공급 물량 가운데 정비사업 비중은 78.5%(예정 물량 포함)에 이른다.하지만 최근 3년가량 공사비가 지속해서 오르고,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미분양 우려 등이 커지며 차질을 빚는 정비사업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뿐만 아니라 조합 내부에서도 소송전이 잇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합장을 교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는 정비사업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면서 사업 지연과 조합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나섰지만, 현장에선 소송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공사비와 인허가 갈등이 조합 내분으로 번져 한 정비구역에서 소송 2~3개가 동시에 벌어지는 사례도 있다.

문제는 소송이 진행되면 사업이 지체되고 이에 따른 조합원 피해가 크다는 점이다.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조정 신청이 총 32건 접수됐는데, 조정이 성립되는 데 평균 548일이 걸렸다. 1년6개월가량 사업이 지체된다는 뜻이다.경기 남양주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조합 내분으로 소송이 장기화하며 조합원 소유 물량 1200가구가 강제 경매로 넘겨지기도 했다. 주민들은 2017년 재건축을 위해 이주를 시작했는데 조합장 자리를 놓고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소유권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소송 기간에 쌓이는 대출 이자는 고스란히 조합원 부담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소송 등 분쟁이 계속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조차 받지 못해 고금리 대출을 계속 받아가면서 사업 추진을 기다려야 한다”며 “분쟁이 끝나더라도 늘어난 금융비용에 사업이 좌초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업 지연 리스크를 겪는 조합은 정부 대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회에는 분쟁 조정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 위해 국토부의 건설 분쟁 조정 업무를 산하 전문기관에 위탁하는 건설산업기본법이 발의돼 있다. 한 재건축 조합장은 “최근에는 정비사업 분쟁 대상이 조합과 시공사를 넘어 금융기관, 종교단체까지 다양해지는 만큼 정부가 중재 대상 범위를 더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재영/유오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