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의 다윗은 왜 ‘슬픈 승자’로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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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유창선의 오십부터 예술이탈리아가 낳은 ‘불멸의 천재 화가’로 불리는 카라바조(1571∼1610)의 전체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이다. 카라바조 출신의 미켈란젤로 메리시라는 의미다. 나중에 그는 카라바조가 아닌 밀라노 출생으로 밝혀졌지만, 우리는 그를 여전히 카라바조라 부른다.
전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불멸의 천재 화가' 카라바조
대표작 (1606)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을 관람하면 카라바조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06)을 볼 수 있다.다윗과 골리앗의 결투에 관한 얘기는 성서 사무엘 17장에 나온다. 베들레헴 출신의 젊은 목동 다윗은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블레셋의 거인 용사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선다. 이 결투에서 승리한 쪽이 패자를 정복할 수 있는 운명이 걸린 싸움이었다. 커다란 키의 골리앗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커다란 창까지 들고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예상을 뒤집고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히 맞혀 쓰러뜨린 뒤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목을 베어 죽였다. 이에 필리스타인들은 도망가고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이런 다윗은 성서에서 믿음을 상징하는 인물로 일컬어졌고, 서양미술사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한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카라바조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여러 버전의 그림으로 그렸다.
이번 서울 전시에 온 작품은 ‘취리히, 개인 소장’이라고 설명이 게시되어 있는데, 1606년경 보르게세 추기경의 의뢰로 카라바조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에서 다윗이 왼손으로 쥐고 있는 골리앗의 잘린 머리는 피폐해진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카라바조 전기를 쓴 벨로리(1613-1696)에 따르면 골리앗의 머리는 실제로 카라바조의 자화상이었다고 한다.피 흘리는 골리앗의 얼굴은 흉측하고 처참하다. 카라바조의 전기 작가들은 이러한 골리앗의 얼굴이 단순한 회화적 표현을 넘어, 카라바조 자신의 내면을 그린 것으로 해석한다. 카라바조는 이 처참한 상징을 통해 사람을 죽이고 피신한 자신의 죄를 참회한 것이라는 얘기들이다.
반면에 승리한 다윗의 표정은 슬픔과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조금만 건드리면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마음이 전해진다.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로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거두었는데도 어째서 기뻐하지는 않고 슬픈 얼굴을 하는 것일까.흔히 원본처럼 얘기되는 보르게세 미술관에 소장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도 두 인물의 모습이 이 그림과 거의 같다. 사실 카라바조는 생전에 워낙 많은 자기 복제품을 그렸기에 어느 것이 원본인가를 굳이 따지는 것이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두 작품은 1609~1610년경에 그려진 다른 버전으로 알려진다.▶(관련 기사) “정말 카라바조 그림 맞아?”…‘바로크 거장’ 전시에서 진품 논란 나온 이유
그런가 하면 다른 모습의 다윗이 그려진 그림들도 여럿 있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같은 제목의 그림은 다윗의 모습과 분위기가 다르다. 골리앗을 죽이고 목을 들고 있는 다윗의 표정은 비장하면서도 의기양양한 승자의 모습답다. 이번에 서울에 온 작품,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작품에 나타난 다윗의 연민과 슬픔은 없다. 카라바조가 워낙 같은 그림들을 복제하여 작품의 연도를 정확히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아마도 좀 더 일찍 그려진 이 그림에서는 자신을 죽인 다윗에 대한 감정의 결이 달랐던 것 같다.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같은 주제의 그림은 또 다르다. 골리앗의 목은 이미 잘려서 바닥에 있는데 다윗은 아직도 밧줄로 그를 조르고 있다. 다윗의 적극적인 살의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연민과 슬픔의 얼굴을 한 다윗의 모습은 아니고, 거대한 적장을 죽인 예루살렘 영웅의 모습이다. 물론 고통스러운 얼굴로 죽은 카라바조의 자화상은 이 그림에서도 자신에 대한 참회를 표현하고 있다.카라바조가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서 자신에 대한 참회의 의미로 자화상을 그렸음은 보르게세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에서 다윗이 들고 있는 칼에 적힌 작은 글씨에서도 나타난다. 칼 윗부분에 ‘H-AS OS’라는 글씨가 있는데 이는 ‘humilitas occidit superbiam’의 약자로 '겸손함이 자만함을 이긴다'라는 뜻이다. 이는 그림만 놓고 봤을 때는, 다윗의 겸손함이 이스라엘과 그들의 신을 능멸한 골리앗의 자만함을 이겼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넘어 로마 시절 전성기를 누리며 교만했던 삶을 살고 살인까지 저질러 피신한 카라바조 자신의 참회를 담은 내용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번에 예술의전당에 전시된 그림에서는 그런 글씨가 없어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골리앗이 카라바조의 자화상이었다면 다윗은 누구였을까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다윗 역시 젊은 시절의 카라바조 자신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한다. 다윗이 승리했음에도 유난히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이중 자화상이 되는 것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 수준의 주장이고 다윗의 모델은 화가 마오 살리니로 추정되는 ‘일 수오 카라바지노’(il suo Caravaggino, 그의 작은 카라바지오)라는 견해도 설득력 있게 존재한다.
카라바조가 승자와 패자의 두 얼굴을 선명하게 대비했던 것은 두 인물의 복잡한 심리적 연결을 통한 장엄함을 느끼게 해준다. 더구나 아무런 배경의 치장도 없이 단조로운 검은색 배경 속에 나타난 장면은 명암의 대비효과를 극대화한 카라바조 고유의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의 극적인 표현이다.
물론 카라바조가 참회의 자화상을 그린데는 보르게세 추기경에게 자신이 참회하는 그림을 전달하여 사면을 요청하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갖고 가던 중에 우연히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그림은 추기경에게 전해지지 못했고, 그는 해변에서 병으로 외롭게 쓰러져 죽은 상태로 발견되고 만다. 그가 사면받고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들이 엇갈린다.카라바조가 자신의 목 잘린 얼굴까지 그린 이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자기 참회이다. 그런데 승자인 다윗이 기뻐하거나 들뜨지 않고 죽은 자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작품의 의미를 한층 깊게 만든다. 순간의 승리에 기뻐하지 않고 죽은 자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는 영웅, 아니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카라바조는 폭행과 살인 등으로 여러 차례 소송에 휘말리고 피신도 했지만, 신앙심이 깊은 화가였음이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성서 속에 나오는 얘기들을 우리 눈앞에 벌어진 극적인 사건으로 보여준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인간 중심적이다. 주름살이 깊이 패이고 더러운 맨발 차림의 가난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배경에는 미화하기 위한 어떤 치장도 없다. ‘빛’과 ‘어둠’의 대비 효과를 사용하며 오직 보이는 대로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에 나오는 평범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존엄해 보인다.기적같이 승자가 된 다윗의 얼굴에서 읽히는 표정도 그런 것 아니겠는가. 자신이 참회하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 목 잘린 자화상을 그리기는 했지만, 자신을 칼로 벤 다윗이 연민을 갖고 슬픈 표정을 짓는 모습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카라바조도 그림 속 자신의 처참한 죽음이 슬펐던 것이다.
유창선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