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의 숨겨진 민낯을 볼 수 있는 밀실에 갇혔다...색(色)다른 밀실 스릴러

한국의 에이드리언 라인,
인간중독, 방자전 감독 김대우

신작 리뷰
한 여자가 거울을 보며 연신 중얼거린다. 여자는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있다고 상상하며 상황극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한참을 거울과 대화는 나눈 여자는 욕실을 떠나고 카메라는 거울 너머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 정말로 한 사람이 거울을 응시하고 있다.
콜롬비아 영화 '히든 페이스' (2011)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김대우 감독의 <히든페이스>는 2011년 개봉한 동명의 콜롬비아 작품 <히든 페이스>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영화는 지휘자 '성진'(송승헌)과 그의 약혼녀이자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단원인 '수연'(조여정) 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상류층 출신의 수연과 분식집 아들로 자수성가한 성진은 매사에 부딪히고, 수연은 이내 영상 메일로 이별을 고하고는 함께 살던 집을 떠나버린다.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그러나 베를린으로 떠난다는 수연은 공항에도 간 흔적이 없고 그렇게 그녀는 오랜 시간 잠적해 버린다. 다행인 것은 오케스트라의 큰 공연 앞둔 수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녀가 미리 후배인 ‘미주 (박지현)’에게 부탁을 해놓고 떠난 것이다. 미주는 지휘자인 성진과 공연을 위한 만남을 갖게 되고, 이러한 만남은 곧 내밀한 술자리로, 그리고 잠자리로 서서히 발전한다.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를 연출한 김대우 감독은 <음란서생>, <방자전> 등으로 한국 영화에 전례에 없는 탐미주의적이면서도 모던한 에로티시즘을 불어넣었던 아티스트다. 2000년대에 분수령처럼 쏟아졌던 조선 시대 사극들 중에서 그의 작품들은 단연코 가장 독보적이고 이국적인 창작물이었다. 마치 에이드리언 라인(<위험한 정사>, <나인 하프 위크>)이 그러하듯, 김대우 감독의 작품들 속에서 ‘욕망’은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스캔들’이자 영화의 ‘화두’다.
[좌] 김대우 감독의 영화 '음란서생' 포스터. [우] 김대우 감독의 영화 '음란서생'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각본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김대우 감독은 <정사>,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같은 작품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1993년 데뷔 이래로(각본 기준) 30여년의 커리어에서 그는 꾸준히 고전주의적이면서도 모던한 그만의 에로티시즘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좌] 영화 '정사' 포스터. [우]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 <히든페이스> 역시 ‘욕망’과 ‘유혹’은 이야기의 중추이자 캐릭터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김대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이번 영화는 그의 마지막 작품 <인간중독> 이후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 개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전작들이 모두 호평을 받았던 것과는 반대로 그가 2014년에 발표한 <인간중독>은 흥행과 평가에서 모두 참패했다. 그의 10년의 공백기가 전작의 실패에 따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만큼 이번 작품의 공개에 기대와 염려가 함께 드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인간중독'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히든페이스>는 치정극의 전형을 따라가는 듯하지만 영화에는 또 다른 줄기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따른 놀라운 반전이 있다. 다른 가닥의 이야기는 잠적한 줄 알았던 수연이 집 안의 밀실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개된다. 그리고 수연과 모종의 ‘딜’을 하고 수연의 자리를 대체했던 미주는 그녀와의 계획을 틀어 더 큰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그녀의 새로운 설계는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이야기는 밀실에 갇히게 되는 대상을 바꾸면서 반전의 머리를 드러낸다.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심장부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반전은 매우 놀랍다. 다만 영화의 이러한 반전은 앞서 일어났던 이야기의 흐름과 유연하게 연계되지 않는 사실상 놀라움보다는 뜬금없는 반전에 가깝다. 따라서 영화는 의아하면서도 허무한 결말과 쇼크 효과만을 남긴 채 끝을 맺는다.<히든페이스>는 기대했던 점도, 염려했던 점도 모두 맞아떨어지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영화다. 밀실이 생겨난 이야기적 배경과 함께 아마도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를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후반의 반전은 앞서 언급했듯, 놀랍지만 실망스럽다. 그런데도 영화의 전체적인 다이내믹은 거침없고 강렬하다.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특히 영화의 서두와 본론은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는) 충분한 서스펜스와 동력으로 짜임새 있게 흘러간다. 반전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히든페이스>는 적어도 감독 김대우의 ‘시그니처’ 즉, 그가 꾸준히 추적하고 있는 에로티시즘적 접근과 캐릭터를 비교적 충실히 재현한 영화라고 평가하고 싶다.

['히든페이스 Hidden Face' 1차 예고편]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