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 읽고 넘어가야 하는 어른들 그림책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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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효진의 이상한 나라의 그림책사사키 마키 <이상한 다과회>
표지부터 밝은 기운을 주는 사사키 마키의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토대로 만든 그림책
하산 자레딘의
종이에 담긴 특유의 향이 매력적
갓 성인이 된 이들에게 선물해줬으면
프랑수아 플락스의
올해도 어김없이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일본 요코하마에 사는 가메타로 오이와 씨는 딱 1년 만에 초대장을 받는다. 가메타로 씨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인도 라이푸르의 이발사 스밀라 씨는 코끼리를 타고, 벨기에 안트베르펜 구둣방의 호흐 형제들은 5인용 자전거를 타고 초대장을 받은 그들은 어딘가를 향해 떠난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나는 파스텔톤이 싫어요! 라고 말하는 듯 선명하고 쾌활 발랄한 색들로 눈을 사로잡는 이 그림책은 사사키 마키의 <이상한 다과회>다. 이 그림책은 읽을 때마다 참 괴짜 같고 흥미로우며 어느 순간에는 소리 내 입 밖으로 읽게 된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는 여지없이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급하게 밖을 나서다가 오늘 찰나의 여유시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날 때가 있다. 가방에 휙 챙겨나가면 후회하지 않을 책들을 줄지어 보았을 때, 단연 1등인 그림책이다. 손에 얹고만 있어도 지나가는 이들의 눈을 힐끔힐끔 훔칠 수 있는 멋진 표지에, 어른 손바닥 크기의 아담함. 세상의 우울감을 꾸짖듯이 형광 발색의 밝고 화려한 숲으로 우리를 초대한다.하산 자레딘 <우리가 어른보다 똑똑해요>
... 말라슈카는 파란 원피스를 입었어요......아쿨카는 노란 원피스를 입었어요.
말라슈카의 집과 아쿨카의 집 마당 사이에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겨난다. 그날은 말라슈카, 아쿨카 두 여자아이가 파란색, 노란색 새 원피스를 입고 나란히 웅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뭐 하고 놀까 궁리하다가 웅덩이로 들어간다. 놀다가 웅덩이 물이 튀어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마을 전체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어른들의 싸움은 어떻게 끝이 날까?이 그림책은 위대한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의 짧은 소설을 토대로 만든 그림책 <우리가 어른보다 똑똑해요>다. 리놀륨 판화*로 그림을 그린 후 손으로 만든 수공 종이에 활판 인쇄로 찍어서 만든 책이다. 책 시작부터 끝까지 종이 한 장 한 장의 질감이 모두 다르다. 책을 넘길 때마다 열 손가락을 어루만져 주듯이 올록볼록 두툼한 종이의 따뜻함이 느껴지고, 종이 단면의 날카로움 대신 부드러우며 단정한 매무새가 매력을 더한다.
처음에 책을 받으면 책마다 특유의 향이 있다. 실제 코를 대고 맡아보면 종이, 인쇄 잉크, 포장용 댐지*,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의 체취 등이 고스란히 쌓여있다. 어느 나라에서 무슨 종이에 어떤 인쇄를 하였는가에 따라 책의 독특한 냄새가 입혀지는데 이 그림책의 냄새는 그 여느 책과도 같지 않다. 밥풀 향이 나는 상아색 종이에 특유의 잉크 향이 묻어 오랜 기간 동안 나와 함께 했던 것 같은 익숙하고 정겨운 향이 느껴진다.그림책에 입혀진 검은 잉크는 다른 색들이 충분히 뽐낼 수 있게 무대 뒤에서 숨어 일하는 스태프와 같은 색을 띠고 있다. 여러 번 세탁하여 빛이 바랜 듯이 점잖은 검은색 위에는 아쿨카와 말라슈카의 새 원피스에 칠해진 파란색과 노란색의 잉크가 명랑하게 춤춘다. 군데군데 잉크가 지나가지 못한 흰 점들이 보이는데 이는 종이 위에 볼록판 인쇄 방식을 적용한 것으로 활판 인쇄 특유의 촉각과 미세한 어긋남이 표현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좋은 재질의 종이와 아름다운 색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른보다 똑똑해요>라는 이 그림책의 제목처럼 작고 미숙해 보이지만 표지부터 내지, 속지까지 배우고 느낄 점이 참 많은 그림책이다. 책 표지 뒷면에는 2000권 중의 몇 번째 책인지 손 글씨로 적혀있다. 2000권 중의 한 권을 갖는 행운을 누리기를 바란다.프랑수아 플락스 <마지막 거인>
창의성은 언제나 상상력이라는 거인의 어깨를 타고 옵니다.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스모어는 거인족의 나라를 찾기 위해 채비를 한다. 이 여행은 우연히 부두를 산책하면서 만나게 된 이상한 그림이 조각된 아주 커다란 어금니 때문이었다. 거인의 나라를 찾아가는 험난한 과정, 그 이후의 이야기 그리고 이 그림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이 그림책은 프랑수아 플락스의 <마지막 거인>이라는 책이다.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스모어의 고통과 환의, 후회와 번뇌가 뼛속까지 느껴진다. '나였더라면, 너였더라면 어땠을까', 가슴 속으로 되뇌어 보게 되는 소위 말하는 ‘어른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봐야 할, 보았으면 하는 그림책이다.
작가의 펜촉이 물결치고 스스로 움직이는 듯이 생생하면서도 섬세한 그림은 책의 내용만큼이나 독자를 빠져들게 한다. 험난한 고통에 진이 빠졌다가 함께 행복했다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가 씁쓸한 여운을 맞이하였다. 최재천 교수, 오소희 작가의 추천 글에서도 보이듯 <마지막 거인>은 묵혀두고 읽어야 할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다.
표지 위에 그려진 거인의 넓은 등과 어깨를 보며 연민을 느낀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이들이 주변에 있다면 제대로 된 ‘어른들’이 되기를 희망하며 꼭 선물하고픈 그림책 중 하나이다.박효진 길리북스 대표
*리놀륨 판화: 리놀륨 판(고무질 물질)을 사용한 볼록판의 판화.
*포장용 댐지: 책을 아래위로 감싸는 정리 및 보호 용 포장 종이, 종이상자 재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