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사 3부작 번역·양명학 소개 헌신…정인재 교수 별세
입력
수정
펑유란(풍우란·1894∼1990), 라오쓰광(노사광·1927∼2012), 차이런허우(채인후·1930∼2019)의 책을 번역해 중국철학사를 국내에 소개하는데 헌신한 정인재(鄭仁在)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23일 오후 5시30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5일 전했다.
향년 83세.
경북 군위에서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이주한 천주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물포고, 고려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7년 대만 문화대에서 '맹자 심학의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고려대 강사를 거쳐 1984∼2005년 서강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쳤다.
'중국철학' 한길을 걸었다.
펑유란의 '중국철학사'(1977)와 '중국철학사 사료집'(1977), 라오쓰광의 '중국철학사1∼4'(1986∼1993), 펑유란의 '중국현대철학'(2002)에 이어 '양명학자 채인후의 중국철학사'(상·하권)(2019)를 번역했다. 펑유란, 라오쓰광, 차이런허우의 중국철학사는 후스(호적·1891∼1962)의 책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 철학서로 꼽힌다.
고인은 차이런허우와 마찬가지로 중국 철학 중에서도 양명학에 마음을 쏟았다.
2003∼2005년 한국양명학회장을 지냈고, 2014년에는 저서 '양명학의 정신'을 펴냈다. 대만 유학 시절부터 차이런허우와 알고 지냈고, 딸 정소이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도 그의 문하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양명학자 채인후의 중국철학사'는 차이런허우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한국어판 서문을 받아 실었다.
양명학에 마음을 둔 이유는 조선 성리학의 배타성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2019년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서양 문화가 들어올 때도 주자학의 전통만 지키고 사특한 서양 문물을 배척한다는 위정척사를 외친 건 '다른 생각'(이단)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는 '닫힌 의식' 때문"이라며 "주자학에는 '판단의 기준'은 있어도 마음 자체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사농공상을 상하주종적 위계질서로 수직적 사회를 만들고,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타율적 사고방식이 성행케 해 질문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선이 500년간 주자학 이외 모든 사상을 배제한 왕과 주자학자들에 의해 소현세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청나라로부터 도륙과 치욕을 겪지도 않고,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를 이뤘을 수도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말년에는 조선시대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명학을 연구한 하곡 정제두(1649∼1736) 등 '강화학파'를 연구하기 위해 2010년 강화에 하곡학연구원을 세웠고, 2020년에는 '양명학의 정신, 강화학파의 사상들'이라는 주제로 10회 강의를 하기도 했다.
딸 정소이 교수는 "(부친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서(논어·맹자·중용·대학)를 양명학 관점으로 번역하시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정재현 서강대 교수 등이 고인의 제자이다.
유족은 부인 손정숙씨와 2녀(정소라<캐나다 코네스토가 대학 교수>·정소이<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사위 박상탁(미국IT기업 수석연구원)·윤희근(타미성형외과 대표원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 26일 오전 8시40분, 장지 서울 유택동산. ☎ 02-2258-5961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연합뉴스
향년 83세.
경북 군위에서 중국 헤이룽장성으로 이주한 천주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물포고, 고려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7년 대만 문화대에서 '맹자 심학의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고려대 강사를 거쳐 1984∼2005년 서강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쳤다.
'중국철학' 한길을 걸었다.
펑유란의 '중국철학사'(1977)와 '중국철학사 사료집'(1977), 라오쓰광의 '중국철학사1∼4'(1986∼1993), 펑유란의 '중국현대철학'(2002)에 이어 '양명학자 채인후의 중국철학사'(상·하권)(2019)를 번역했다. 펑유란, 라오쓰광, 차이런허우의 중국철학사는 후스(호적·1891∼1962)의 책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 철학서로 꼽힌다.
고인은 차이런허우와 마찬가지로 중국 철학 중에서도 양명학에 마음을 쏟았다.
2003∼2005년 한국양명학회장을 지냈고, 2014년에는 저서 '양명학의 정신'을 펴냈다. 대만 유학 시절부터 차이런허우와 알고 지냈고, 딸 정소이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도 그의 문하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양명학자 채인후의 중국철학사'는 차이런허우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한국어판 서문을 받아 실었다.
양명학에 마음을 둔 이유는 조선 성리학의 배타성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2019년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서양 문화가 들어올 때도 주자학의 전통만 지키고 사특한 서양 문물을 배척한다는 위정척사를 외친 건 '다른 생각'(이단)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는 '닫힌 의식' 때문"이라며 "주자학에는 '판단의 기준'은 있어도 마음 자체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사농공상을 상하주종적 위계질서로 수직적 사회를 만들고,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타율적 사고방식이 성행케 해 질문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선이 500년간 주자학 이외 모든 사상을 배제한 왕과 주자학자들에 의해 소현세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청나라로부터 도륙과 치욕을 겪지도 않고, 일본보다 더 빨리 근대화를 이뤘을 수도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말년에는 조선시대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명학을 연구한 하곡 정제두(1649∼1736) 등 '강화학파'를 연구하기 위해 2010년 강화에 하곡학연구원을 세웠고, 2020년에는 '양명학의 정신, 강화학파의 사상들'이라는 주제로 10회 강의를 하기도 했다.
딸 정소이 교수는 "(부친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서(논어·맹자·중용·대학)를 양명학 관점으로 번역하시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정재현 서강대 교수 등이 고인의 제자이다.
유족은 부인 손정숙씨와 2녀(정소라<캐나다 코네스토가 대학 교수>·정소이<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사위 박상탁(미국IT기업 수석연구원)·윤희근(타미성형외과 대표원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 26일 오전 8시40분, 장지 서울 유택동산. ☎ 02-2258-5961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