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中, '대국-소국 마인드'로 이웃할 생각마라

"中패배 베팅땐 후회"등 온갖 무례
트럼프 대중 강경에 태도 바꿔
한국 비자면제·주한대사 급 높여

中과 협력해야지만 신뢰 의문
망루 외교·'中산봉우리' 추앙에도
사드 보복, 혼밥 홀대 잊어선 안돼

홍영식 한국경제매거진 전문위원
2008년 5월 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기자회견. 후 주석은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두 가지 해석이 나왔다. 우선 이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을 먼저 방문한 뒤 중국을 찾은 데 대한 불만이다. 중국 외교부가 이 대통령 방중 당일 한·미 동맹을 두고 “냉전의 유물”이라고 대놓고 무례를 저지른 것에서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주중한국 대사 격을 낮춘 데 대한 반감이다. 이명박 정부는 장관급을 보내던 관행을 바꿔 외교부 아태국장을 지낸 실무외교관을 대사로 발탁했다. 실용외교 차원이었다. 중국은 신임장 제정을 질질 끌다가 이 대통령이 중국땅을 밟은 뒤에야 내줬다. ‘한국 길들이기’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1년 반 뒤 이명박 정부 실세이던 류유익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주중대사로 보내고 나서야 실타래가 풀렸다. 중국이 당시까지 외교부 부국장급을 주한대사로 보낸 것과 대비된다.저변에 깔린 중국의 대(對)한국 마인드는 ‘대국(大國)-소국(小國)’이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가 이슈일 때인 2017년 방한한 중국 외교부 부국장은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중국의 한국 하대(下待) 사례들은 헤아릴 수 없다. 왕이 외교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 방중 시 어깨를 툭툭 치는 결례를 저질렀다. 주한대사는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내민 ‘5개의 마땅함(응당·應當)’이라는 제목의 요구 리스트는 속국으로 여기는 듯하다. ‘중국은 큰 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 등 문재인 정부의 굴종외교가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 중국 서열 25위권 밖이던 왕 장관 방한 땐 대한민국 의전 서열 1·2위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통령 측근 등이 줄줄이 그를 만났다.

그러던 중국이 최근 한국에 다가서려 한다. 한국에 비자 면제 조치를 내렸고, 신임 주한대사 급도 높였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 가속화도 중국 측이 먼저 제시했다. 시진핑 주석은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라고 했다. 속셈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외교안보 라인에 대중국 강경파를 앉히면서 공세가 한층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 데 따라 외교 전략적 공간을 넓히려는 포석일 것이다. 한국을 지렛대 삼아 러시아에 밀착하는 북한을 길들이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의도가 어떻든 중국은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미국과 ‘양자택일’ ‘반비례’일 수는 없다. 대미, 대중 관계는 제로섬이 아니다. 북·러 밀착이 우리 안보에 미칠 파급력을 감안하면 중국을 활용할 여지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성에 대비해 외교 유연성을 키울 필요도 있다. 중국이 여전히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란 점에서도 그렇다.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따져봐야 한다. 중국의 이중플레이다. ‘한반도 평화’ 운운하며 2017년 이후 유엔 대북 제재에 반대해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를 방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시 주석 회담 때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점도 재차 확인했다. 시 주석 방한 문제부터 따져보자. 시 주석은 2014년 7월 이후 한국에 한 번도 안 온 반면 한국 대통령은 네 번 방중했다. 상호주의라는 외교 원칙 무시다. 시 주석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방한할 것처럼 띄웠다. 방한을 시혜 베푸는 수단으로 삼는 듯하다. 그래놓고 감감무소식이다. 이번에도 시 주석이 자신의 방한은 확답하지 않은 채 윤 대통령에게 방중하라고 요청했다. 여전히 대국-소국 마인드가 묻어난다. 중국이 숱하게 말해온 ‘영원한 이웃’ 레토릭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기본적인 외교 관례부터 존중해야 한다. 발톱을 일시적으로 감추는 꼼수로는 한국에 가까이 올 생각을 말아야 한다.

한국도 국익을 위한 실리외교 관점에서 중국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속은 금물이다. ‘미·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가 자칫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강경 전략과 마찰을 빚는 쪽으로 가선 안 된다. 시 주석 방한에 집착하다 덜컥 섣부른 약속이라도 내밀어선 곤란하다. ‘망루외교’ 성의에도 사드보복으로, ‘중국은 산봉우리’식 추앙에도 혼밥 홀대로 돌아온 것을 복기해봐야 한다. 시 주석의 전랑외교가 어디 가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