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날씨의 표변, 수목의 배신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이라는 시에서 라일락을 생동감 넘치는 봄의 전령으로 표현했다. 동서고금의 시나 노래에서 라일락꽃 향기 하면 봄을 떠올렸다. ‘첫사랑’인 꽃말도 계절의 시작인 봄과 닮았다.

봄의 계절어나 마찬가지인 라일락이 이제는 새롭게 정의돼야 할지 모르겠다. 라일락꽃이 봄뿐 아니라 가을에도 피고 있어서다. 수년 전부터 경기 포천의 국립수목원에 있는 라일락은 가을에도 개화하고 있다. 앞서 진달래와 철쭉은 10여 년 전부터 봄과 가을에 꽃망울을 터트렸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아그배나무(5월 개화)와 참빗살나무(5~6월)는 올해 처음 봄·가을에 두 번 개화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일부 종에선 제철 꽃이 다른 계절에도 피는 ‘불시(不時) 개화’뿐 아니라 동일한 나무에서 낙엽과 꽃, 열매, 새순이 동시에 나기도 했다.계절을 초월하는 기현상은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경기 용인의 한택식물원에서도 똑같은 모습이 관찰되는 등 전국 각지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10월 초 반짝 추위 이후 기온이 예년보다 올라가자 여름에 진 봄꽃이 겨울에 다시 개화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상 고온은 올겨울까지 지속될 수 있다. 지난달까지 올해 최강 한파를 전망하던 기상청은 한 달 만에 따뜻한 겨울이 올 것이라고 급선회했다. 북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 주변에 고기압이 확장해 대륙 한파를 막아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겨울옷 매장과 스키장엔 악재고, 골프장과 관광지엔 희소식이다. 겨울 해외여행도 예년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따뜻한 겨울은 언제든 바뀔 여지가 있다. 한반도 기상 자체가 변화무쌍해 일기예보가 틀릴 확률은 상존한다. 산지가 많아 기온 변화가 잦고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반도여서 강수량 예측도 어렵다. 기상청은 이런 구조적 요인 외에 “북극 얼음이 덜 녹은 상태여서 한국에 찬 공기를 더 유입시킬 수 있다”는 얘기를 곁들이며 오류 가능성을 열어놨다. 롤러코스터 같은 한국 날씨에 적응해야 하는 건 꽃들만은 아닌 것 같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