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공적연금 6개로 나눠 경쟁…年수익률 8% '세계 1위'

연금이 노후를 바꾼다
(2) 공적연금 DC형 선제 개혁…연금고갈 위기 막아

1990년대 저출산·고령화 '직면'
'내는 만큼 받는' 방식으로 전환

6개 펀드, 포트폴리오 전부 달라
주식 투자 비중 70%대로 압도적
"스웨덴 모델, 英·日도 벤치마킹"
스웨덴 스톡홀름에 사는 페테르 그레게포르스(68)는 연금으로 한 달에 8만4000스웨덴크로나(약 1100만원)를 수령한다. 은퇴 전 소득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30년간 연금 계좌를 주식 위주로 운용한 결과다. 그는 “100세 때까지 노후 걱정이 없다”며 “매년 봄을 이탈리아에서 보내고 여름엔 핀란드 별장에서 지낸다”고 했다.

스웨덴은 ‘연금 생활자의 천국’으로 불린다. 1913년 공적연금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는 등 현대 연금 체계의 기틀을 세웠다. 공적연금 수익률은 연평균 8~15%로 세계 1위를 달린다. 위기가 없던 건 아니다. 1990년대 저출생·고령화로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고 연금 고갈 우려가 불거지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낸 만큼 돌려받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혁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스웨덴 모델’로 불리는 이 개혁 방식은 같은 문제를 겪는 노르웨이 영국 일본 등이 벤치마크했다.
스톡홀름 시민들이 중앙역 앞 거리를 걷고 있다. 스웨덴은 공적연금을 확정기여(DC)형으로 전환해 연금 고갈 위기에서 벗어났다. 스톡홀름=최만수 기자

주식 비중 70% 넘어

스웨덴 연금제도의 핵심은 ‘자율 경쟁’에 있다. 평등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대표 국가지만 연금제도에서는 미국보다 더 냉정하게 경쟁의 가치를 중시한다.

스웨덴 공적연금의 가장 큰 특징은 기금을 6개 독립 펀드로 나눠 경쟁을 붙이는 것이다. 각 펀드는 포트폴리오 구성이 모두 다르다. 독립적인 법인으로서 자산 운용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각 펀드 이사회가 조직과 경영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AP6 펀드는 중소기업과 스웨덴·북유럽 지역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고, AP7 펀드는 프리미엄연금으로 규정해 다양한 글로벌 자산에 투자하며 민간 자산운용사와 경쟁한다. 사적연금인 퇴직연금 시장에까지 국민연금을 진입시켜 포트폴리오를 일원화하려는 한국 정치권의 움직임과 반대다.

주식 비중이 다른 국가 연금에 비해 크게 높은 것도 눈에 띈다. AP1(73.8%), AP3(71.7%), AP4(70.7%) 등은 주식 비중이 70%를 넘는다. 41%인 한국에 견주면 상당히 높다. 세계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AP3의 5년 연평균 수익률(2018~2022년)은 8.1%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한국(4.2%)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7개 정당 사회적 합의로 연금개혁

스웨덴은 1998년 시작한 연금개혁으로 이 같은 체계를 구축했다. 낸 만큼 받도록 해 ‘저부담-고급여’ 문제를 해소한 게 핵심이었다.스웨덴은 1992년부터 7개 정당이 참여하는 ‘연금 실무작업단’을 꾸려 운영 중이다. 실무작업단은 ‘적게 내고 많이 받던’ 기존 제도를 자기가 평생 낸 보험료와 평균 소득증가율 수준의 이자를 총자산으로 해 연금을 받도록 바꾸자고 제안했다. 확정급여(DB)형 연금을 확정기여(DC)형으로 전환한 것이다.

연금 총자산이 감소하면 연금 지급액을 자동으로 줄이는 제도도 마련했다. 냉정한 결정으로 연금 고갈을 막을 수 있었다. 다만 연금에서 소득재분배 기능이 사라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연금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연금 급여액이 낮은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최저보장연금’을 국가 재정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오래 일할수록 연금이 늘어나는 구조를 만들어 조기 은퇴를 억제하고, 젊은 세대가 고령자의 연금을 부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세대 갈등을 방지하는 효과를 얻었다.

실무작업단은 고령사회보장부 장관이 위원장을 겸한다. 야콥 룬드베리 스톡홀름연금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과거의 가치만 고집하면 국민의 미래와 노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사회적 합의로 이어졌다”며 “연금개혁 논의는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