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점에 3억원…28세 이목하 돌풍

한국 작가들 국제 무대 약진

홍콩 경매서 '아임 낫 라이크 미'
추정가보다 2배 높은 값에 낙찰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로 초상화
작년 아트바젤 신진 작가 25인
올해는 '아트시 10인'으로 꼽혀
지난 25일 홍콩 필립스옥션 경매에서 165만1000홍콩달러(약 2억9800만원)에 낙찰된 이목하 작가의 ‘아임 낫 라이크 미’. 필립스옥션 제공
“165만1000홍콩달러(약 2억9800만원)! 축하합니다.”

지난 25일 홍콩 필립스옥션 경매장. 낙찰을 알리는 경매사의 망치 소리가 울리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국의 20대 작가 이목하(28·사진)의 그림 ‘아임 낫 라이크 미(I’m Not Like Me)’(2020)가 추정가(7200만~1억2600만원)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에 팔린 직후였다.
Auctioneer Jonathan Crockett selling lot 23, Moka Lee’s I’m Not Like Me. Image courtesy of Phillips
이 작가의 그림은 이날 필립스옥션에서 열린 ‘홍콩 근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작품 중 하나였다. 경매를 시작하자마자 호가가 순식간에 치솟아 100만홍콩달러(약 1억8000만원)를 넘어섰다. 5분 가까이 이어진 경합 끝에 결정된 최종 낙찰가는 2억9800만원. 20대 작가가 그린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살아 있는 한국 작가 중 경매 낙찰가가 ‘억대’인 작가는 극소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주목할 만한 결과다.

지난 2년 새 급성장

이 작가는 초상화를 주로 그린다. 실제 모델을 세우는 대신 SNS에 올라온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을 그리는 게 특징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뒤 계정 주인에게 연락해 소정의 사례비를 내고 사진을 그릴 권리를 구입하는 식이다. 그림 분위기도 독특하다. 특유의 명암과 그림자가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런 그림에는 젊음의 양가적인 기쁨과 불안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평가다.초상화는 가장 전통적이면서 직관적인 인기 미술 장르다. 하지만 그리는 작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람 얼굴을 어색함 없이 잘 그리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초상화가라는 희소성, 독창적인 작업 방식과 스타일 덕분에 이 작가는 젊은 나이에 주목받았다. 그가 올해 서울시립미술관 단체전과 부산현대미술관 단체전에 모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필립스옥션은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는 젊은 작가”라고 그를 소개했다. 그 말대로 최근 2년간 국제무대에서 이 작가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2023년에는 아트바젤이 매년 가장 주목할 만한 신진 작가 25인을 꼽는 ‘디스커버리스’에 선정돼 국내외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 10월에는 글로벌 미술 플랫폼 아트시가 꼽은 올해 주목할 만한 작가 10인(뱅가드 2025)에 선정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작품을 띄웠다. 내년 초에는 영국 런던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이 예정돼 있다.
이목하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Ego Function Error'.

갈수록 거세지는 韓 작가 돌풍

근래 해외 미술계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금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정면 외벽에 이불 작가의 조각을 전시 중이다. 영국의 세계적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은 대표 공간인 터바인 홀을 이미래의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런던의 현대미술관 헤이워드갤러리는 전관을 양혜규 작가 전시로 채웠다. ‘미디어아트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ZKM미술관은 지난 23일 한국 미디어작가 김성환의 전시 개막식을 열었다.

미술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 작가들이 각광받고 있다. 미국 화이트큐브 뉴욕 지점에서는 박서보 화백 유작전인 ‘박서보, 신문 묘법 2022~2023’이, 알민레시 런던 지점에서는 정영주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달동네를 주제로 한 정영주 작가의 '사라지는 풍경 1119'.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오래전부터 한국 미술계는 서구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여러 수준 높은 작가들을 키워내고 있었다”며 “비서구·비주류 미술을 주목하는 바람이 일면서 한국 미술이 쌓아온 내공이 마침내 세계에 알려지고 온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