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새 무속인 4배 증가… 한국 점집이 잘 되는 이유는 [서평]

국내 무종교인 비율 63% 달해
종교 없지만 무속 신앙이 성행
부적과 굿은 '자기 예언' 효과
"종교는 불안을 먹고 자란다"
80만명. 국내 무속인 수는 2000년대 초반 20만명에서 올해 네 배 가까이 늘었다. 과학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지만 여전히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무당을 찾는 사람이 많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왜 초자연적인 존재를 숭배하고 의지하려고 하는 것일까. 신과 종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민 문화심리학자가 쓴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는 현대인이 여전히 신을 찾고 주술적 관습에 현혹되는 이유를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한국인의 문화와 심성이 종교와 만나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변모해왔는지에 대해 풀어나간다. 국교가 지정돼 있지 않고 종교가 다양한 우리나라에선 무종교인의 비율이 63%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인을 두고 "특정 종교는 없지만 몹시 종교적인 민족"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입소스가 26개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세계 최하위권이지만, 종교적 행태와 영적 관심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속 신앙이나 운세 보기 같은 영적 활동이 일상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믿고 의지하려는 한국인의 마음 속엔 불안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람들은 미래가 궁금해서 점집을 찾는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가는 마음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법은 알려줄 수 있지만, 미래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무속인이 이야기해주는 대로 하면 보장된 미래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무당을 찾는 이유는 통제감 때문이다.
무속인들은 정확한 미래를 알려주지 않는다. 구체적인 조언보다는 '언제쯤 무슨 운이 들어오니 어떤 종류의 일을 해보는 게 좋겠다'라는 식의 조언이 대부분이다. 그럼 의뢰인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조건에 무속인의 말을 대입해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러면서 불안을 해소하고 잃었던 통제감을 획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굿과 부적의 효과는 무당의 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플라시보 효과와 자기실현적 예언의 효과에서 나온다. 저자는 한국 기독교의 빠른 성장에도 무속신앙의 관념과 영향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신의 아들인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해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토속 신앙의 신념 체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설명이다. 신의 사제로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무당의 역할이 일부 성직자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도 내놓는다.

미래에도 종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와 관계 없이 의지할 곳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종교의 역할은 아직 남아 있다. 사람들의 우울과 불안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 그 근거다. 저자는 앞으로 한국 종교의 모습은 한국인의 우울과 불안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형태로 발달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