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삼각형 '파세'는 발레의 정류장, 우리 인생에도 있을까

[arte] 이단비의 발레의 열두 달

프랑스어로 '지나가는'이라는 뜻을 지닌
발레의 정류장, 파세(passé)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기 위해
일정 시간 균형 잡고 서 있는 동작
코어 힘을 단단하게 하여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

삶에도 파세가 있다면···
만추의 계절이 첫눈 소식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11월은 겨울로 가는 길목이자 정류장. 올해는 유달리 추웠다 더웠다, 들썩들썩했지만, 11월은 늘 곧 다가올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채비시키는 시간이었고, 낙엽이 흰 눈에 덮이기 전에,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전에, 계절의 정류장이 되어준다. 정류장은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는 곳이지만, 정류장 자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곳은 공간을 잇고, 사람을 잇고, 시간을 잇는 중요한 곳이다.

발레에서도 정류장과 같은 의미를 지닌 동작이 있다. 바로 파세(passé)이다. 파세는 발레의 모든 작품과 발레를 연습하는 모든 과정에서 늘 함께하는 동작이다. 파세는 한 다리를 바로 세워 중심축을 잡고, 다른 다리의 무릎을 구부려서 발끝을 중심축이 된 다리의 무릎 위치에 가져다 놓는 동작이다. 클래식 발레에서 파세는 턴 아웃 상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모습을 앞에서 보면 두 다리 사이에 삼각형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마법의 삼각형’이라고 부른다.
파세를 하고 있는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의 학생들(1999년) / 사진. ©Arthur Elgort/Vaganova Ballet Academy
발레에서는 파세를 통해서 들어 올린 다리를 앞이나 뒤, 혹은 옆으로 보낼 수 있다. 모든 동작이 파세를 거치는 건 아니지만 아라베스크(arabesque), 애티튜드(attitude) 등 발레의 기본적인 주요 포즈나 동작들은 파세를 거쳐서 만들고, 공중에서 이뤄지는 롱 드 장브 앙 레르(rond de jambe en l'air)의 경우도 파세의 상태에서 이뤄진다. 흥미롭게도 파세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지나가는’이라는 뜻이 있다. 영어로는 패스드(passed)와 마찬가지이다. 즉, 파세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패스포트(passport)이다. 이 마법의 삼각형을 발레의 정류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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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르티레(retiré)와 혼동되기도 한다. 한 다리로 중심축을 세우고 다른 다리의 무릎을 구부려서 중심축 다리에 붙여 삼각형 모양을 만드는 것은 같지만, 르티레는 움직이는 다리가 서 있는 다리의 발목을 거쳐 무릎에 이르러서 멈추는 자세를 뜻한다. 앞, 뒤, 옆으로 다리를 뻗지만, 서 있는 다리의 위아래로만 움직인다는 점에서 파세와 다르다. 종종 파세를 한 상태로 일정 시간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경우 동작이라기보다 하나의 포즈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 엄밀하게 말해서 움직이기 위한 동작에 속하고 르티레는 포즈(자세)에 속한다. 발레 <해적(Le corsaire)>의 메도라 솔로 바리에이션의 경우 파세와 르티레로 이뤄진 동작들이 많이 등장한다.
발레 &lt;해적&gt;의 메도라 바리에이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Svetlana Zakharova) / 사진. ©Andrei Melanyin/Bolshoi Theatre
파세는 그저 한 다리 세우고 다른 다리를 구부리는 것뿐인데도 그게 ‘~한 것뿐이다’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동작이다. 이 동작을 할 때 몸의 선을 아름답게 만들고 단단하게 몸을 잡고 있으려면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파세를 하려면 우선 턴 아웃을 정확하게 해야 하고, 코어의 힘을 단단하게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몸의 에너지는 하늘을 향하면서 풀업 상태로 만들어야 하고, 중심축이 되는 다리부터 머리까지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잡아야 한다. 동작을 수행하는 동안 흔들리지 않는 균형감을 유지해야 하는 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모던발레에서는 허리가 옆으로 빠지는 오프발란스(off-balance) 동작으로도 수행할 수 있다. 파세는 마법의 삼각형이지만 마법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한참 힘든 시기에 <롱 베케이션>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삶이 삐거덕거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그 시기를 신이 선물한 긴 방학이라고 생각하라는 의미의 제목이자 그런 내용을 담은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나오고도 거의 20년쯤 지나서 봤는데도, 그 낡고 오래된 화질과 분위기 안에서도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슬픔과 막막함에 대한 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파세는 짧게 지나가기도 하고 긴 방학처럼 머물기도 한다. 그건 침체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중요한 지점이다. 발레에서 파세가 있어야 앞으로 뒤로 혹은 옆으로 다음 동작을 이어서 갈 수 있는 것처럼, 정류장이 있어야 가고 싶은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것처럼, 삶에서도 파세가 있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정류장 안에서 오래 서성일 때는 긴 방학이라고 생각하며, 파세 상태로 오래 내 몸의 호흡을 잡고 균형점을 찾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11월은 가을과 겨울을 잇는 파세의 계절이다. 이제 겨울로 들어간다. 한 해를 마무리 짓고, 또 한 해를 맞이한다.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라는 흔한 말을 떠올린다.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