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가까스로 빠져나온 러시아의 덫 '노르트스트림' [서평]

천연가스관'노르트스트림'은
러시아가 유럽에 보낸 트로이목마


마리옹 반 렌테르겜 지음
권지현 옮김
롤러코스터
321쪽
1만8700원
2022년 9월26일 발트해의 해저에서 두 번의 굉음이 울렸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가 폭발한 것이다. 이 가스관은 러시아에 적대적인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발트해를 건너 러시아에서 독일로 곧바로 천연가스를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가스관들은 왜 만들어졌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에 왜 폭발하게 됐을까?

프랑스의 언론인 출신 작가 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노르트스트림의 덫>에서 푸틴의 러시아가 어떻게 유럽을 장악하려 했는지 노르트스트림의 역사를 통해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재구성한다. 저자는 노르트스트림은 푸틴이 러시아의 위대함을 되찾기 위해 유럽 한복판에 깔아놓은 트로이 목마라고 고발한다.연간 수송 능력이 1100억㎥에 달하는 긴 파이프라인은 기술상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되지만 구상 단계부터 반대 목소리가 컸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가 심화되어 푸틴이 천연가스를 전략무기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스관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배제되는 동유럽 및 발트해 국가들이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마주할 수도 있었다. 결국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현실이 됐다.

러시아는 20년 동안 체계적으로 가스관을 유럽 전역에 깔기 위해 힘을 썼다. 가스관은 선박으로 운송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구 온난화 해결에 관심이 많은 유럽을 사로잡았다. 특히 독일은 가스관 건설에 앞장섰고,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푸틴이 보장하는 지위와 임금을 받고 꼭두각시 역할을 했다.

러시아의 국영 천연가스 기업 가스프롬은 사실상 푸틴의 사금고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가스프롬에서 공급하는 천연가스 물량이 파이프라인 전체를 채울 수 없는데도 가스관은 계속 이어졌다. 2001년 이후 20년 동안 유럽에 거미줄처럼 깔린 가스관은 잠깐 잠그기만 해도 한 국가를 공포에 빠뜨릴 수 있게 됐다.노르트스트림을 누가 폭발시켰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유럽은 본색을 드러낸 푸틴의 덫에 완전히 갇히기 전에 가까스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정치와 경제, 탐욕과 무지가 얽히고설킨 음모와 반전의 지정학 스릴러처럼 읽힌다.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를 이해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 원인을 깨닫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