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대입·군대 한 번에"…'세 토끼' 잡은 고교생 비결 봤더니

2024 JOB 리포트

"대학? 취업하고 가면 되죠"
학교·회사 오가며 실무 배우고
'P-TECH'로 전문학위도 취득

'걸음마 단계'인 韓 직업교육
韓 고교 직업교육 참여율 17%
OECD 평균보다 20%P 낮아
“아직 스무 살이 안 됐지만 취업, 병역, 학위 과정을 모두 밟고 있습니다. 고졸이라 사회생활에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안개가 걷히는 느낌입니다.”

선박 엔진 가공 회사인 상림정공에 근무 중인 특성화고등학교 출신 이승호 씨(19)는 고등학교 때 ‘일학습병행’ 사업을 알게 된 걸 큰 행운으로 여긴다. 이른 취업을 원했던 이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이스터고 진학을 희망했지만 실패했다. 좌절한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정부의 고교 일학습병행 정책이었다. 2년 동안 학교와 회사를 오가며 ‘컴퓨터 제어(CNC) 밀링 머신’ 교육을 받았고,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정규직이 됐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P-TECH(전문학위과정)에 참여해 곧 대학에도 갈 예정이다. 재직 중인 회사가 병역특례업체라 산업기능요원으로서 병역과 학업, 취업을 모두 병행하는 ‘일석삼조’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직업계고를 졸업한 박수정 씨(21)는 성일정보고 재학 당시 ‘하고 싶은 게 없던 아이’였다. 막연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기술(IT) 분야가 유망하다는 얘기를 듣고 소프트웨어(SW) 개발 직종과 관련한 일학습병행 훈련에 참여한 게 인생을 바꿨다. 이 덕분에 재학 중 클라우드 플랫폼 기업인 웰데이타시스템에 취업했고, 이후 P-TECH를 통해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4년제 대학 컴퓨터전자공학과에 다니고 있다. 사내에서 클라우딩 컨설팅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그는 “일학습병행을 만난 뒤 하고 싶은 게 생긴 아이가 됐다”며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졸 콤플렉스 극복했어요”

역대급 청년 취업난으로 취업을 포기하고 ‘그냥 쉬는’ 20대 청년이 41만 명을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고등학교에 다니며 일찍 취업하고 재직 중 대학에 다니며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청년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또래보다 ‘일찍 철든’ 이들의 인생 경로 선택에는 정부 지원도 한몫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14년 일학습병행제를 도입해 고졸 청년의 조기 인생 항로 개척을 지원하고 있다. 일학습병행은 기업이 청년을 먼저 채용하고, 채용된 학생은 기업에 취업한 뒤에도 회사를 다니며 전문대, 4년제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직업훈련제도다. 지난 10년간 약 15만6536명이 참여했다.일학습병행은 인력난을 겪는 회사와 취업을 원하는 청년 모두에게 ‘윈윈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사로서는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 하는 청년이 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2년 이상 재직해 안정적으로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학생은 조기 취업으로 경제적 자립을 하면서 학비 걱정 없이 기술을 배우고 학위까지 받을 수 있다. 자립준비 청년이던 A씨는 “무력감과 패배감에 젖어서 중·고교 때 방황을 많이 했었다”며 “우연히 알게 된 일학습병행제 덕분에 고졸 콤플렉스도 떨칠 수 있었고 막연했던 삶에 방향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후 취업까지 18.5개월

일학습병행제가 눈길을 끄는 것은 역설적으로 고졸 청년에 대한 직업 교육 부족과 그에 따른 높은 취업장벽 때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고교 단계 직업교육 참여율은 평균 37%인데, 한국은 17%에 그쳤다. 범위를 넓혀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면 미진학고졸 청년 고용률은 초대졸(전문대졸) 이상 고용률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올해 미진학고졸 고용률은 61.3%로 초대졸 이상 고용률 74.6%보다 13.3%포인트 낮다. 일할 수 있는데도 그럴 뜻이 없어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비경활 인구 비율’은 올해 기준으로 초대졸 이상이 20.7%인 데 비해 미진학고졸은 35.2%로 무려 14.5%포인트 높다.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도 고졸 청년이 대졸에 비해 훨씬 길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고졸 청년이 졸업 후 첫 취업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18.5개월로 역대 가장 길었다. 대졸 이상 8.5개월보다 10개월이 더 걸린 셈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9월 발간한 ‘청년의 첫 직장(임금근로자 기준) 분석’ 자료에 따르면 청년(15~29세)의 첫 직장 전일제 일자리 비중은 올해 76%인데, 학력이 고졸 이하인 경우는 이 비율이 66.5%로 뚝 떨어졌다.

○기업과 대학 오가며 학위까지

전문가들은 고졸 청년들이 일찍 돈을 벌면서 능력을 키우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도록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지원 프로그램은 P-TECH 과정이다.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작된 교육 훈련 시스템으로 도제학교나 특성화고 졸업생, 일학습병행 이수자를 대상으로 전문대 등과 연계해 실시하는 기술 훈련 과정이다. 기업과 대학을 오가며 현장 실무능력을 키우면서 전문대 학위(산업, 전문학사)를 취득할 수 있다. 지금까지 누적 참여자는 1554명이다.

한 직업 컨설턴트는 “대학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고졸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 탐색을 할 수 있는 정보력”이라며 “일학습병행은 현장 경험을 미리 쌓아준다는 점에서 사회 적응력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 일학습병행독일 등의 일터 기반 학습을 한국 현실에 맞게 설계한 ‘현장 기반 훈련’. 기업이 도제식 현장 교육훈련을 실시·평가해 자격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곽용희 기자

■ 잡리포트 취재팀

백승현 좋은일터연구소장·경제부 부장곽용희 경제부 기자·이슬기 경제부 기자

권용훈 사회부 기자·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