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코스피, 연기금은 1.7조 베팅했다

이달 들어 1조7898억 순매수
증시 추락 막는 소방수 역할

삼성전자 가장 많이 담아
LG엔솔·SK이노 등 사들여
저평가 심화에 '대장株 줍줍'
이달 들어 연금기금이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700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 기준 올 들어 가장 큰 순매수 규모다. 코스피지수가 주가순자산비율(PBR) 0.85배 수준으로 급락하자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달 국내 주요 대기업이 잇따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저가매수 나선 연기금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7898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올해 월별 기준 가장 큰 순매수액이다. 연기금은 코스피지수가 연중 고점이던 지난 7월 유가증권시장에서 825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후 8월 6944억원, 9월 1537억원, 10월 4584억원 등 3개월 연속으로 매수세를 기록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와 상장사 실적 부진 등으로 코스피지수가 크게 하락하자 연기금이 국내 증시의 소방수 역할을 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인투자자는 이달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9601억원어치를 순매수했지만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제외한 주식 순매수액은 2745억원에 그쳤다. ETF 등을 제외한 연기금의 11월 주식 순매수액은 1조9349억원으로 주요 매수 주체 중 가장 큰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 SK텔레콤 등 주요 대기업이 밸류업 계획을 속속 발표한 것도 장기 투자를 하는 연기금을 움직이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저가 매수 매력이 커진 점도 연기금이 대규모로 매수한 배경으로 꼽힌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200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전날 기준 8.92배 수준이다. 최근 10년 평균인 10.92배를 크게 밑돈다.

○반도체·2차전지 대표주에 베팅

연기금이 최근 집중 매수한 종목은 대부분 반도체와 자동차, 화학, 2차전지 등 최근 주가가 부진하던 국내 대표 산업 종목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개월(10월 25일~11월 26일) 사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삼성전자로 461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2029억원)과 SK이노베이션(1684억원), 현대자동차(1070억원), 네이버(985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 14일 5만원 선이 무너진 삼성전자는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한 뒤 주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0.69% 상승한 5만8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주가의 발목을 잡은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대 고객사(엔비디아) 납품에 의미 있는 진전을 보였으며 패키징 문제도 더 이상 이슈가 아니다”며 “내년 중반 HBM3E 대량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내년 2차전지주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많지만 테슬라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LG에너지솔루션의 실적은 경쟁사 대비 비교적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자동차 세액공제 혜택을 폐지하더라도 전기차 1위 업체인 테슬라는 타격을 덜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