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도 달지 못할 시간에 임원까지"…'초고속 승진' 식품기업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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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도 못달 시간에 임원까지1년 반. 식품기업에서 오너 3세가 입사 후 임원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보통 직원이라면 입사 후 대리도 달지 못할 짧은 시간이다. 이처럼 식품업계에선 유독 오너 3세들의 초고속 승진 사례가 두드러진다. 보통 대기업 그룹의 경우 오너 일가 자녀는 입사 후 능력을 입증받는 성과를 쌓거나 수년간 경영 수업을 받는 등의 사례와는 대조적이다.
'초고속 승진' 식품기업 3세
"경영능력 검증 거치지 않으면 기업 지속성 빨간불" 지적도
업계에선 식품그룹처럼 재계 10위권 밖의 그룹 오너 자녀의 경우 상대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덜 받다 보니 이렇다할 검증 절차 없이 초고속 승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본다.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리온 3세인 담서원 상무는 1989년생으로 오리온 입사에서 임원 승진까지 채 1년 반이 걸리지 않았다. 화교 출신의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오너 2세 이화경 부회장 부부의 장남인 담 상무는 2021년 7월 오리온의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핵심 부서인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 1년5개월 만인 이듬해 12월 인사에서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올해 35세인 담 상무는 10대 시절인 20여년 전부터 재계의 미성년 주식 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담 상무는 지주사 오리온홀딩스 지분 1.22%와 2018년 증여받은 오리온 지분 1.23%도 갖고 있다.
'불닭볶음면'으로 잘 알려진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의 오너가 3세인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CSO)도 2020년 20대 나이에 임원이 됐다. 전 본부장은 김정수 부회장의 장남으로 1994년생이다. 2019년 25세에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해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하며 임원이 됐다.당시 부친인 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전 본부장이 예상보다 일찍 경영에 참여하게 된 케이스다. 올해 서른살인 전 본부장은 입사한 지 4년여 만인 지난해 10월 상무로 승진했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지난해 이사 직급을 폐지하고 상무보 직급을 신설하면서 임원 체계를 개편했다.
매일유업 오너 3세로 김정완 회장의 장남인 김오영 씨는 2021년 10월 매일유업 생산물류 혁신담당 임원(상무)으로 입사한 뒤 2년6개월 만인 지난 4월 전무로 승진했다. 김 전무는 1986년생으로 2013년 신세계그룹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뒤 이듬해 정직원으로 전환돼 재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김 전무는 매일홀딩스와 매일유업 지분을 0.01%씩 갖고 있다.
삼양그룹의 경우 김윤 회장의 장남인 김건호 삼양홀딩스 사장이 지난해 말 사장에 선임돼 '오너 4세' 경영 신호탄을 쐈다. 1983년생인 김 사장은 2014년 삼양사에 입사해 10년 만에 사장까지 올랐다.농심 오너 3세로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은 지난 25일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1993년생인 신 전무는 2019년 사원으로 정식 입사해 2년 10개월 만인 2022년 구매담당 상무로 승진한 바 있다.
오뚜기는 함영준 회장의 아들인 함윤식 씨(33)와 딸 함연지 씨(32)가 모두 회사에서 일하며 '가족 경영'을 하고 있으나, 두 자녀는 아직 임원이 아니다. 오너가 3세인 함윤식 씨는 지난 2021년 오뚜기에 사원으로 입사해 현재 경영관리 부문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함연지 씨는 올해 초 오뚜기 미국법인인 오뚜기아메리카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지난 5월부터 오뚜기아메리카에 입사해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오뚜기의 최대주주는 함 회장(25.07%)이며 윤식, 연지 씨가 각각 2.79%, 1.07%를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 오너가 일원이 입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원으로 승진해 경영까지 하려면 검증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젊은 자녀나 경험이 일천하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기업 경영을 하는 경우에 기업 전체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다"며 "자손이라도 경영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은 쓰지 않는다는 독일 머크사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