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 언덕의 장난꾸러기 '티티 파리지엥'
입력
수정
[arte] 정연아의 프렌치 시크19세기 가난한 노동자와 빈민들의 거주 지역이었던 파리 북동쪽에 위치한 몽마르트르(Montmartre), 벨빌(Belleville), 메닐몽땅(Ménilmontant) 에 살던 아이들을 티티 파리지엥 (Titi Parisien)이라고 불렀다.
프렌치 베레모와 멜빵을 맨 아이부터
노동자 계급의 성인을 이르는
티티 파리지엥(Titi Parisien)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에 나오는 인물
'가브로슈'가 대표적인 티티 파리지엥
때론 무례해 보이지만
정의로운 인물을 일컬어
티티 파리지엥들은 프렌치 베레모를 쓰고 아버지와 형에게 물려받은 크고 해진 바지를 멜빵으로 잡아맨 수완이 좋고 골목길 구석구석을 자기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잘 알고 있는 파리에서 태어난 장난꾸러기 아이들이다.19세기 산업혁명으로 농업과 수공업이 지배적이었던 사회는 상업과 산업사회로 역사적인 전환 시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파리 외곽과 근교에 설립되는 수많은 공장에는 무일푼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일하게 되었다. 그들은 학교를 가기도 하고, 가족을 돕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주저하지 않고 훔치기도 하며, 농담과 장난을 일삼았다. 이후 20세기 초에 들어 파리의 특유 속어를 사용하는 노동자 계급의 성인들을 티티 파리지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첫 번째 티티 파리지엥 '가브로슈'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대표적인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서 장 발장(Jean Valjean)은 가난 때문에 빵을 훔쳐 19년의 징역을 받고 출감 후 수도원에서 은식기를 훔쳤다가 수녀님들의 용서에 감동하여 선을 행하고 불쌍한 코제트를 구하며 평생을 희생한다.레 미제라블에서 코제트를 노예처럼 부려 먹고 양육비를 받아 가로챈 테나르디에 부부의 큰아들 가브로슈(Gavroche)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거리에 내몰려 고아처럼 생활하지만, 관대하고 수완이 좋은 첫 번째 티티 파리지엥이다.
가브로슈는 겉으로는 자유분방하며 때로는 무례하게 보이는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내심은 정이 깊고 쾌활한 성격이다.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혁명군에 합류하게 되는데 혁명군 측에 총알이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듣자, 가브로슈는 겁 없이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가 시신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총알과 화약을 주우러 나서기도 하는 정의로운 소년이었다.자유를 외치는 용감한 티티 파리지엥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걸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에서 영감을 얻어 가브로슈를 탄생시켰다.루브르 랜스(Lens) 박물관에 소장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프랑스 혁명을 묘사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1789년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된 프랑스 대혁명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1830년 7월에 일어난 두 번째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자유의 여신 마리안느는 프랑스 삼색기를 들고 전진하고 그녀의 오른쪽에는 두 손에 소총을 들고 소리치는 팔각형 베레모를 쓴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의 모습이 빅토르 위고가 영감을 얻은 티티 파리지엥, 바로 가브로슈다.빅토르 위고는 1830년 혁명군과 함께 바리케이드에서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용감한 소년들을 보고 '이 작고 큰 영혼'이라며 존중했다. 티티 파리지엥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어떤 위험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걸기도 했기 때문이다.빨간 풍선을 쫓는 티티 파리지엥들
빨간 풍선(Le Ballon Rouge)은 알베르 라모리스(Albert Lamorisse) 감독의 프랑스 사실주의 단편 영화로 1956년에 개봉되었다. 34분짜리 이 영화는 빨간 풍선과 어린 소년 파스칼의 모험 이야기이다.
아카데미에서 단편 영화로는 최초로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고 칸 영화제 단편 영화 부문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다.
빨간 풍선은 마치 애완견같이 파스칼을 따라다니는데, 파리의 서민주택가 벨빌·메닐몽땅의 티티 파리지엥들이 그 풍선을 빼앗고 결국 터트려 버리고 만다. 그러나 파리 곳곳의 풍선들이 파스칼에게 날라와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해피엔딩의 동화 같은 서정적인 영화이다.파리를 사랑한 서민들의 사진작가 로베르 드와노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는 1930년대부터 수십 년간 파리 사람들의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흑백 사진에 담았다. 그는 파리 시내의 일상생활, 특히 아이들의 모습을 즐겨 찍었다. 로베르 드와노의 사진 속에서 파리의 30, 40, 50년대 티티 파리지엥들의 일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티티 파리지엥의 레트로 패션 스타일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가브로슈가 쓰고 다니던 팔각 베레모는 이후 가브로슈 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가브로슈 캡은 일반 베레모보다 더 복고풍 스타일이다. 1800년대 베레모와 가브로슈 캡을 쓴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대규모 이민을 갔다. 이후 19세기와 20세기 초 미국의 대도시에서 신문을 파는 청소년들이 가브로슈 캡을 착용하여 뉴스보이 캡(newsboy cap)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세기말에 영국 버밍햄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갱단의 이야기를 다룬 BBC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 방영 이후 영국의 베레모와 가브로슈 캡의 판매율이 25%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티티 파리지엥들의 유니폼이었던 프렌치 워크 재킷이 몇 년 전부터 트렌디한 룩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했다. 가브로슈 캡과 프렌치 워크 재킷, 양복 조끼 그리고 워커 슈즈 앵클부츠는 멋쟁이들의 캐주얼 패션 데일리 아이템이 되었다.티티 파리지엥에서 이민 파리지엥으로
티티 파리지엥이라는 표현은 6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셸 오디아르(Michel Audiard)의 영화에서, 생 마르탱 운하(Canal Saint Martin)의 호텔 듀 노르(Hotel du nord)에서, 빈민촌 벨빌에서 태어난 에디트 프아프(Edit Piaf)의 삶에서 그리고 영화 '아멜리에'의 몽마르트르에서 티티 파리지엥들을 만날 수 있었다.티티 파리지엥들이 모여 살던 곳에는 어느덧 아프리카와 아랍 그리고 아시아 이민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이 지역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회 계급과 경제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예술가들과 보보 파리지엥(bourgeois bohème의 줄임말)이 안착하게 되면서 가난한 이민 계층과 공존하는 지역이 되었다. 반세기가 조금 더 지난 지금, 학생들의 이름이 미셀·피에르·막틴·모니크에서 무하메드·오마·말릭·아마두 같은 아프리카와 아랍 이름으로 바뀌고 있어 프랑스의 이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