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사랑' 세계은행 日 부총재 "한국 성장 자랑스러운 일"

"한국은 두 세대 만에 세계 11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정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IDA 총회는 분명 아프리카 등 다른 개발도상국에 큰 영감을 줄 것입니다."

세계은행에서 원조 등 개발금융 업무를 총괄하는 아키히코 니시오 부총재(사진)는 내달 5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개발협회(IDA) 총회를 앞두고 지난 26일 워싱턴DC 세계은행 빌딩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아키히코 니시오 세계은행 부총재.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한국은 내년 IDA 원조금액을 전년 대비 45%로 높이기로 지난달 18일 발표했다. 올해 지원액은 5850억원이었으나 내년에는 8460억원으로 늘어난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여전히 경제규모 대비 지원액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증액 속도는 빠른 편이다. 부산엑스포 유치 등 활동 과정에서 한국은 원조 참여가 가지는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 있다.

니시오 부총재는 1983년부터 세계은행 등에서 원조 담당 업무를 맡아 온 베테랑이다. 세계 각국의 원조 전·후 모습도 생생히 기억한다. "1984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은 분명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 위생 문제로 인한 간염 같은 질환이 많았고 정부 구내식당에서는 혼밥을 먹어야 했지요."

그는 "IDA 수혜국이 기부국으로 돌아오는 일은 아주 교육적이고 영감을 주는 일"이라며 "한국은 그 대표주자"라고 했다. 한국은 1961년 처음으로 IDA 원조를 받기 시작했고 1973년에 원조를 졸업했다. 1977년에는 기부국으로 전환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1인당 GDP는 158달러(1960년)에서 3만3121달러(2023년)로 증가했다. 인도는 10년 전 IDA를 졸업한 후 바로 기부를 시작해 현재는 20번째로 큰 기부국이다. 니시오 부총재는 "오늘은 유럽의 작은 나라 코소보가 기부국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몇년 동안 코소보 측에서 얘기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결정할 줄 몰랐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IDA 원조에 참여한다. 이처럼 작은 국가들도 원조에 참여하는 것은 원조가 단순한 기부 이상의 '국제사회 일원이 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니시오 부총재는 "개발도상국의 성장은 곧 세계 경제의 성장"이기 때문에 원조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개도국들은 예전과 다른 '다중 위기(poly-crisis)'에 처해 있다. 그는 "이 국가들은 팬데믹의 여파, 식량위기, 기후위기, 부채위기 등 복합적인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지난 20여년 경력에서 본 적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키히코 니시오 세계은행 부총재.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그러나 한국의 원조금액 비중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니시오 부총재는 "유럽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의 상당부분을 원조에 할당하고 있고,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몇몇 국가는 GDP의 0.7% 규칙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비 전통적인 기부국도 높은 수준의 개발 원조를 제공하기도 한다면서 그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을 꼽았다. "아프리카 국가와 보다 통합 연결되려는 것이 주된 동기"라고 했다. 한국의 현재 원조는 주로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가 최근에는 남아시아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니시오 부총재는 "방글라데시 등 지역은 엄청난 성장 잠재력이 있고, 한국에 거대한 시장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투자, 재정지원, 디지털부문 등 지식 전문성에서 크게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아프리카 지역 역시 농업에서 서비스 및 제조업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는 만큼 수출주도 성장 과정에 관해 한국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니시오 부총재는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7대 대통령으로 다시 선출된 것으로 인한 영향에 관해 그는 "지금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1기 트럼프 정부 때에도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잘 협력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니시오 부총재는 "올해는 선거가 많은 해이고, 어떤 권력도 계속 되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각국 정부의 성격이 바뀌더라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견제와 균형 장치를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니시오 부총재는 한국음식 애호가이기도 하다. 삼계탕과 비빔냉면을 첫손에 꼽았다. "부산의 한 낡고 허름한 식당에서 할아버지들과 먹은 삼계탕 맛은 정말 잊을 수 없다"고 했다.그는 "한국의 성장 여정이 매우 독특하다는 것을 한국 사람들이 충분히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여정에서 얻은 경험은 글로벌 공공재라고 불릴 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한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