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숨어있는 혁신의 보고 출연硏

송형석 테크&사이언스부장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가 모처럼 반전 드라마를 썼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세운 창업기업 큐어버스가 지난달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가 3억7000만달러(약 5000억원)로, 출연연 기술수출 신기록을 경신했다. 큐어버스가 만든 신약 ‘CV-01’은 먹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다.

대학 동문의 10년 대계

KIST의 기술 수출이 화제가 된 것은 출연연의 기술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거나 해외로 수출되는 일 자체가 흔치 않아서다. 국민이 다 아는 성공 사례를 찾으려면 1996년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통신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CV-01도 기술 이전과 상용화, 수출에 이르는 과정이 험난했다. KIST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기술 출자회사 큐어버스가 생겨나 CV-01 기술을 이전한 것은 이듬해인 2022년이다.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낸 것부터 따지면 성과가 나오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바이오는 출연 연구소의 기술 상용화가 녹록지 않다. 후보물질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다년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개발한 연구소와 기술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소통하고 교류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기에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큐어버스는 운이 좋았다. 해당 연구를 총괄한 박기덕 KIST 박사와 사업을 진행한 조성진 큐어버스 대표는 연세대 생명공학과 동문으로 석사·박사 과정을 함께 밟은 친구 사이다. KIST의 기술이 큐어버스로 이전된 뒤에도 두 사람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후속 연구를 같이했다. 이런 과정이 임상 3상까지 이어지면서 기술 수출이라는 성과로 연결됐다.

KIST와 큐어버스의 기술 수출은 박수를 받을 만한 성공 사례다. 하지만 다른 연구소에 CV-01의 성공 모델을 적용하긴 힘들어 보인다. 연구원들에게 언제 성과가 나올지 모르는 프로젝트에 ‘무한 애프터서비스’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정부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기술 사업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고 밝혔다. 그는 “출연 연구기관에 1년에 5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기술 이전 성과는 2000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정부 연구개발(R&D) 생태계에 ‘메스’를 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출연 연구소 생태계 바꿔야

정부 출연 연구소가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예산 배분과 성과 측정 시스템 때문이다. 연구소들은 논문을 몇 개 썼는지, 특허가 몇 개 나왔는지를 중시한다. 수치로 드러나는 결과물이 없으면 예산이 줄거나 프로젝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종 결과물인 기술이 기업에 이전됐는지, 이전된 이후에 상용화까지 이어졌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CV-01의 성공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정부 출연 연구소엔 혁신의 조각들이 존재한다. 이를 잘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에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단건의 연구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서 말의 구슬을 효율적으로 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