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청정수소발전 흥행 실패…기업 "단가 높아 입찰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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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생산량 11%만 채워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소에 암모니아를,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에 수소를 사용해 전력을 만드는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시중에 유통되는 수소·암모니아 도입 단가가 워낙 비싼 탓에 발전사들이 정부가 제시한 전력 도입 단가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주거나 전력 도입 단가를 낮추지 않는 한 적자를 보면서까지 청정 연료를 쓸 수 없다는 게 발전사들의 입장이다. 청정 암모니아·수소 생산 시장 선점을 위해 선제 투자에 나선 SK그룹 등에 비상이 걸렸다. 수요 감소가 불가피해서다.
'60兆 수소 경제' 삐걱
정부 年 6500GWh 규모 입찰
남부발전만 750GWh 공급키로
블루수소 값 치솟자 기업 불참
업계 "보조금 등 대안 절실"
○60兆 연료 시장 무산되나
27일 업계에 따르면 전력거래소는 CHPS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국남부발전과 다음주 본계약을 맺는다. 남부발전은 강원 삼척에 있는 석탄발전소 삼척빛드림본부 1호기에 암모니아를 혼소해 2028년부터 연 750GWh(기가와트시) 전력을 생산하기로 했다. 국내 대기업 계열사가 해외에서 암모니아를 수입해 남부발전에 공급하기로 했다.당초 정부는 청정 수소·암모니아를 통해 연 6500GWh 전력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도입 가격에 맞춰 입찰을 신청한 곳이 남부발전밖에 없어 750GWh만 공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당초 계획의 11.5%에 불과하다. 입찰에 도전한 남동발전과 동서발전, 중부발전 등은 전력거래소의 가격 상한선(㎾h당 460원 수준)보다 10~20% 이상 높은 가격을 써내 탈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입찰에선 올해 입찰에 실패한 전력 5700GWh를 더해 총 8700GWh가 입찰 시장에 나온다.
발전사들이 높은 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청정 수소·암모니아 가격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블루 암모니아 예상 가격은 t당 700달러 수준이다. 블루 수소 생산 단가는 t당 1800~4680달러로 널뛰기하고 있는데, 지난해 말보다 크게 올랐다.글로벌 유통 시장에서 구매해 전력을 만들면 발전 단가가 전력거래소의 도입 가격인 460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일하게 입찰에 성공한 남부발전은 적자를 보고 전력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반면 원자력(㎾h당 53.0원)과 석탄(㎾h당 119.5원), 액화천연가스(LNG·㎾당 159.7원) 등은 청정 암모니아·수소의 10~30% 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발전사가 생산한 전력을 한국전력에 판매하는 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은 ㎾h당 평균 139원(3분기 기준)이다.
○내년 사업도 ‘먹구름’
CHPS는 정부가 세계 최초로 시작한 무탄소 전력 입찰 제도다. 해외처럼 개별 에너지 기업이 아니라 정부 주도 무탄소 입찰 사업이어서 에너지업계의 관심이 컸다. 정부는 지난 5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1만5500GWh(전체 중 2.4%)의 전력을 수소·암모니아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연간 200만t 규모의 암모니아(수소는 80만t)가 필요한데, 현재의 유통 예상값으로 환산하면 약 60조원의 시장이 된다.그러나 발전사들은 청정 연료 가격과 정부 정책이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정부 목표는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전사 입장에선 청정 수소·암모니아를 수입해 유통할 수 있는 선박과 연료 탱크 등 초기 투자비도 만만치 않다. 연료 탱크를 갖추는 데만 기업별로 수백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청정 수소·암모니아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곳이 없어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국내에서 충분한 수요가 확보돼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입찰에 성공한 남부발전과 연료 공급사 역시 흑자를 내기 어렵지만, 선제 투자로 사업에 도전해보자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정 수소 생산 시설을 준비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 E&S 등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원하는 발전 단가와 청정 암모니아·수소 가격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를 내다 팔 곳이 없을 수 있어서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정부가 보조금을 주든, 발전 단가를 낮추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규/김우섭/이슬기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