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횡재세 걷어라"…또 민생금융 요구에 은행들 '분노'

또 민생금융 압박…은행 "사실상 횡재세"

당국, 2년 연속 兆단위 헌납 요구
"민간 기업에 강제 사회환원" 지적
금융당국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은행권에 수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금리 시기에 대규모 이익을 낸 은행권에 사실상 ‘강제 사회환원’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야 할 서민 지원에 민간 기업을 끌어들여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밸류업 정책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은행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년 시행할 ‘민생금융 지원 시즌2’ 방안을 연내 확정하기 위해 최근 은행권과 구체적인 사회환원 방법과 규모를 조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확정해 올해 시행한 은행권의 민생금융 지원은 소상공인 대상의 이자 캐시백(환급) 1조5000억원을 포함해 총 2조1000억원 규모로 이뤄졌다.금융당국은 내년에도 소상공인의 이자 캐시백을 비롯해 ‘비금융’ 분야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민생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소상공인에 대한 캐시백처럼 취약계층에 물고기를 가져다주는 방안이 핵심이었다”며 “내년에는 취약계층이 물고기를 직접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 등이 주요 지원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민생금융의 기본 취지는 은행이 이자를 받은 소상공인 등에게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자는 것”이라며 “대상을 명확하게 설정해 지원 효과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사실상 횡재세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수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 압박이 매년 반복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사회환원은 필요하지만 은행별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재원을 정부 입맛에 따라 원칙 없이 투입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兆단위 헌납 요구에…은행권 "밸류업에도 역행"
금융당국 '민생금융' 압박…"사실상 횡재세" 업계 반발

정부가 은행권에 2년 연속 민생금융 지원을 요구하기로 한 것은 고금리로 인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은행들은 올해도 대규모 이자이익을 거뒀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고금리에 힘입어 이익을 냈으니 불가피하게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을 도울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은행들은 상생을 위해 사회 환원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환원 방식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수조원 단위의 사회 환원은 사실상 세금과 다름없는데 법률에 의하지 않고 정부 요구로 임의로 부과되면 향후 주주가치가 심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익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은행들은 작년 12월 확정된 민생금융 지원이 올해 마지막으로 종료될 것으로 기대했다. 투자자를 대상으로도 민생금융 지원이 일회성 비용임을 강조해왔다. 은행별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매년 고정적으로 발생하면 주주가치가 훼손돼 투자자가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자 캐시백(환급)을 포함해 은행들이 올해 민생금융 지원 방안에 따라 사회에 환원한 금액은 국민은행 3700억원, 하나은행 3500억원 등 2조1000억원이다.하지만 정부가 내년에도 상생을 이유로 은행권에 다시 민생금융 지원을 요구하기로 하면서 민생금융 지원 요구가 매년 반복될 우려가 커졌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수천억원의 민생금융 지원 비용이 매년 고정비용으로 인식되면 장기 수익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올해 3분기 실적이 작년과 비교해 감소 전환한 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대출 자산이 급격하게 불어나며 이익이 늘었지만, 가계대출 억제 정책과 금리 하락세로 인해 실적이 꺾였기 때문이다. 향후 실적도 악화할 것으로 금융업계는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이자이익은 올 3분기 14조6000억원으로, 직전 분기(14조9000억원) 대비로는 물론 작년 3분기(14조8000억원)와 비교해도 줄었다. 금융사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작년 3분기 1.63%에서 올해 3분기 1.52%로 0.11%포인트 하락했다.

○“도덕적 해이 확산 우려”

금융위원회와 은행들은 아직 내년에 시행할 ‘민생금융 지원방안 시즌2’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확정하진 않았다.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시행한 소상공인 이자 캐시백을 포함해 다양한 비금융 지원 방안이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시행한 지원과의 차별화를 위해 내년엔 소상공인 교육 프로그램과 같이 비금융 지원을 대폭 강화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은 소상공인 이자 캐시백이 내년에도 반복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비금융 지원만으로는 지난해 수준의 대규모 민생금융 지원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이자 캐시백이 매년 반복되면 차주가 성실하게 대출을 상환할 유인이 떨어져 도덕적 해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반복적인 민생금융 지원 압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시각도 있다. 매년 수조원의 사회 환원 압박은 사실상 세금과 다름없는데, 헌법 제59조는 세금이 법률에 따라 부과돼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한 시중은행 임원은 “금융당국은 횡재세 부과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결국 돈을 내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민생금융 지원 압박도 횡재세의 일종”이라며 “명확한 원칙에 의해 부과되는 횡재세가 민생금융 지원보다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차라리 더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의진/강현우 기자 justjin@hankyung.com